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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32

[소설] 자살 면접 낯선 메시지를 받았다. 자신이 소설을 썼다며 읽어 주길 바란다, 는 작가에게서. 종종 이런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근래 워낙 책 욕심을 낸 탓에 쉽게 틈이 나질 않아 정중히 거절할 심산이었다. 순간 표지가 날아들었다. 괴기스러운 그림에 자살이라니. 민감하면서 불편감을 주기도 하는 제목은 순간적으로 눈썹 끝을 꿈틀이게 만들 정도로 호기심을 잡아끌었다. 자살 면접? 뭔가 그로테스크 하기도 하면서 자살이 만연해지는 사회문제를 건드리나 싶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읽기는 한참 전에 읽었으나 갑작스러운 낙상 사고로 쇄골이 부서지며 내 팔이 그로테스크 해져서 한 달 가까이 미뤘다. 소설은 생각과는 다르게 장편이 아닌 5편의 단편이 실렸다. 첫 이야기, '세희에게'는 치매와 스토킹을 적절히 연결 .. 2022. 2. 18.
[소설/낭독리뷰] 명작 스마트 소설: 시대를 앞서간 스마트 소설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다. 짧은 소설을 앞으로는 그리 명명하겠다는 출판사의 다부짐이 엿보인다. 한데 창조적인 독자를 위함이라니 도대체 나는 어디서 창조를 얻어야 할지. 어쨌거나 내게 창조적 영감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좋아하는 카프카의 어떤 소설이 담겨 있을지 사뭇 기대된다. 하아… 문 앞에서 입장조차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남자의 이야기는 순간 답답함이 치민다. 인생의 끝은 죽음이라는 것이 법인 것일까? 법의 문으로 성큼 들어가지도 슬쩍 들어가지도 못하고 쭈뼛쭈뼛 배회하다 그 문은 오직 자신에게만 열려 있던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남자는 이미 늙고 죽음에 한 발짝 다가선 것이라는 사실이 허망밖에. 로드 던세이니, 그의 작품 은 판타지다. 마치 짧은 영화를 본 것처럼 눈앞에 상점이 펼쳐진다... 2021. 10. 22.
[소설/낭독리뷰] 검은 모자를 쓴 여자 제목만큼이나 시커먼 표지에 을씨년스러운 건물이 묘한 호기심을 부추긴다. 역시나 소설은 활자에 생명력이 있는 듯 독자의 호흡을 잡아끌며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어떤 이유로든 민의 불안은 내게 전염된다. 숨죽이고 순식간에 읽어 내려가게 된다. 메모하는 걸 잊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이렇게 찐한 미스터리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다. 최소한 최근에는.​ 평온한 날들이라는 믿음과는 다르게 민의 정신세계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갑작스러운 은수의 죽음 이후 기이한 일들은 민을 괴롭히고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민과 남편, 민과 까망이를 둘러싼 이 미스터리한 관계에 집요하게 파고들더니 소설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짧게 등장하고 종교와 철학을 탐미한다. 심지어 난해하고 심오하다.​ "중요한 건 그 순간에 내가 거기.. 2021. 10. 20.
[소설/낭독리뷰] 플라멩코 추는 남자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정기적으로 문학상 작품들을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익숙한 이름의 문학상이라 서평단을 신청해 읽었다. 7천만 원의 고료라는 게 흡족하지 않아 개인적으로 0을 하나 더 붙여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숨에 읽었다. 내용이 방대한 세계관을 지닌 서사나 깊은 철학을 요구하는 소설이 아니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리 빨려 드는 데는 분명 뭐가 있긴 있겠지 싶다. 내가 남훈 씨에게 너무 감정 이입을 한 게 아닌가 싶다가도 왠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살짝 가부장적인 아버지이면서 나보다는 가족을 앞세워 앞만 보고 달려온 중년의 가장의 감정이 스펀지에 물 스미듯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렇게 한 남자의 개인사가 가정사를 지나 진짜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이 눈물 난다. 소설은 3인칭 시점으로 투박하고 거친 남훈.. 2021. 10. 3.
[소설/낭독리뷰] 어떻게 지내요 참 친절한 제목이라는 느낌이 들어 따뜻한 기분이 확 퍼졌다. 한데 의문형이 아니다. 어쩌면 이미 어떻게 지낼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하게 안부를 묻는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궁금하다. 숨차다. 어떻게 강연장에 올라선 남자, 로 시작한 글이 이렇게 물흐르듯 막힘이 없이 그러면서도 격렬한 감정을 놓지 않고 수십 페이지를 끌고 갈 수 있는지 그저 뻑이 간다. "사람들에게 희망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봐요." 30쪽 세상은 희망이 없고 인류는 종말을 맞이할거라는 경고가 아닌 단언을 하고는 사라진 재수없는 강연자는 자신의 강연에서 강연료 대신 청중의 희망을 받아 갔다. 그래서 호스트는 입에 거품을 물고 오전에 암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는 친구를 보고 온 여자에게 강연자를 오지게 .. 2021. 9. 11.
[소설/낭독리뷰]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SF 소설을 읽는다. 게다가 초능력자들의 누아르라니. 표지부터 심상치 않아 정말 냉큼 읽고 싶었던 책이다. "딱 냉장고 온도로 얼어 죽지도 썩어 문 드러 지지도 않는 4도 정도." 37쪽 ​ 정희 아줌마의 말은 딱 4도 정도 되는 온도의 감정이 실렸다, 는 생각이 들 정로 궁서체스러워 그냥 멋졌다. 트렌치코트에 빨간 립스틱에 매니큐어의 조화가 순식간에 그려지지 않아서 살짝 당황스럽긴 하지만(이런 여인네에게 근접해 본 적이 없는지라) 어쨌든 멋지다. 무슨 신비를 간직한 비밀경찰 같지 않은가. ​ 허약하지만 객기에 가까운 지랄 같은 용기스러움을 탑재한 진에게 감취진 히어로급 능력이 있는 건지 읽어 나갈수록 흥미진진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끝을 보는 건 정말 순삭이다. 근데 .. 2021.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