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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소설/낭독리뷰] 어떻게 지내요

by 두목의진심 2021.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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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친절한 제목이라는 느낌이 들어 따뜻한 기분이 확 퍼졌다. 한데 의문형이 아니다. 어쩌면 이미 어떻게 지낼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하게 안부를 묻는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궁금하다.

 

숨차다. 어떻게 강연장에 올라선 남자, 로 시작한 글이 이렇게 물흐르듯 막힘이 없이 그러면서도 격렬한 감정을 놓지 않고 수십 페이지를 끌고 갈 수 있는지 그저 뻑이 간다.

 

"사람들에게 희망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봐요." 30쪽

 

세상은 희망이 없고 인류는 종말을 맞이할거라는 경고가 아닌 단언을 하고는 사라진 재수없는 강연자는 자신의 강연에서 강연료 대신 청중의 희망을 받아 갔다. 그래서 호스트는 입에 거품을 물고 오전에 암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는 친구를 보고 온 여자에게 강연자를 오지게 비난한다. 근데 종말과 죽음이라니... 결국 인류에게나 개인이에게나 끝이 있다는 걸 굳이 이리 친절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했다가 있겠지 한다. 우린 타인의 죽음은 보면서도 자신의 죽음은 보지 않으려 하니까.

 

그렇게 순식간에 챕터 하나가 끝났다. 그나저나 그 재수없는 강연자가 전 남자친구라니, 추리물도 아닌 것이 웬 반전이람.

 

그러다 '살 수 있는 것'과 '죽지 않는다는 것'의 차이가 뭘까, 싶은 생각이 얼핏 들었다. 죽음과 나이 듦에 대한 생각을 타자의 입을 통해 대신 하는 느낌이다.

 

기억을 잃어 가는 치매와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케모브레인에 시달리는 시기는 어쩌면 비슷한 일을 겪는 일일까? 이야기를 읽다보면 굉장히 진지하게 소멸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게 한편으로는 꽤 담담해서 가볍기도 하다. 그러면서 어떻게 지내느냐는 안부가 정작 지금 받고 있는 고통을 인식하느냐는 질문으로 대체되는 게 많이 당황스럽다.

 

 

"내가 먼저 나를 없애 버리면 암이 나를 없앨 수 없을테니까. 그리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데 기다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133쪽

 

2년 전, 딱 이맘때 뇌종양(교모세포종)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도중 죽은 친구가 생각났다.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한달만에 가족도 친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친구도 고통에 시달리며 옆에 있어줄 누군가를 찾았을까? 결국 죽는다는 것을 예감하면서도 그 시간을 기다렸을까? 아니면 이런 것들이 의미가 없었을까? 그리고 옆에 있어 줄 누군가로 내게 부탁을 했다면 나는? 어질러진 책상처럼 생각들이 흐트러졌다. 읽기를 잠시 멈추고 책을 덮었다.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167쪽

다시 읽기 시작한 책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그리고 타 온 커피가 식어 버릴 만큼 '나는 어느 유형이지?' 생각한다.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인지 내겐 저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 인지 어쩌면 그러길 바라는 건지.

"왜 이 정도의 감정뿐일까." 174

오래된 연인이나 노부부들의 이야깃 속에 푸석대는 감정의 변화가 이번에는 의문형으로 들린다. 열렬하고 상대를 욕망하던 시간들이 늙어감에 따라 아직 옆에 있던 혹은 이미 헤어졌던거에 관계없이 어느 순간 어느 정도의 감정만 남게 되는 이유를 자문하지만 실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들렸다.

 

그래 당신은 아직 감정이 살아 있는가, 라고. 핸드폰에 저장된 아내의 번호에는 아직 '설렘'이라고 저장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21년을 함께 살면서 그다지 감정이 상할 정도로(나만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크게 다퉈 보지 않은 걸로 봐서는 좀 더 오래 저장되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죽음에 가까이 간다는 일은 단순히 늙어가는 일만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짧은 한숨) 어릴 때, 음악 시간을 회상하며 '좋았다'라는 말이 심장을 힘껏 쥐었다 놓은듯 했다. 음치 건 명창이 건 다 모여 있어 '특별한' 소리가 만들어 지고 게다가 그 소리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다, 는 말에 순간적으로 우리 아이들의 교실이 그려졌다. 언제쯤이면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장애가 있고 없고 관계없이 아이들이 모여 있어 특별한 웃음이 끊이질 않는 교실 그래서 소름돋을 정도로 행복한 교실이 추억될 수 있을까. 진심 바라고 바라는 일이다.

 

(조금 긴 한숨) 끝났다. 근데 뭐지? 이 허무는? 정작 친구는 감행 한걸까? 근데 왜 친구의 친구가 죽는 것처럼 느껴지지? 다소 끝을 이해할 수 없는 끝남이긴 했으나 옮긴이의 글을 통해 종말과 죽음 그리고 '딱 너다움'의 공감을 정리한다. 옮긴이도 글을 참 쓴다.

 

어쨌거나 이 책은 결코 죽음이 읽히지 않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슬프지도 않아서 미안한. 죽도록 계획 해봐야 되는 일 하나도 없는 게인생이라는 걸 조용히 확인한다. 삶의 의미? 죽자사자 의미를 만들자고 살아야 하는 일일지도 모르는데, 더 이상 왜 사냐고 묻지 좀 말자. 작가의 삶에 대한 통찰이 막 전염된 듯 하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삶에 대한 이야기라니. 작가의 사려 깊음이 눈물난다. 추천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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