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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인문/낭독리뷰]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by 두목의진심 2021.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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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긴즈버그 생전에 쓰인 책이지만 사후에 출간된 듯하다. 만약 그가 읽지 못했다면 많이 아쉬워했을 책이다. 다수 의견이든 소수의견이든 그가 사건에 대한 의견서를 코리 브렛 슈나이더가 법적 해설을 덧붙였다. 그를 추모하기에 충분히 좋은 책이다.

 

긴즈버그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작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미 대선에 이 앞서 긴즈버그 후임으로 누가 결정되느냐가 선거의 향방을 가를 변수로 떠오른 트럼프의 꼼수 덕분에 그의 이름을 기억했다. 미국 법조계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라는 것, 이름이 다스 베이더를 연상시킨다는 것이 특이했었다.

 

서문만으로도 숨차다. 그가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고 그런 일들이 단순히 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인권을 넘어선 인간의 권리로 저항을 연결 짓는 중대한 법적 투쟁이었음을 보여준다. 책은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 임신·출산의 자유, 선거권과 시민권을 카테고리로 13개 사건의 의견서를 다루고 있다. 무조건 다수나 소수, 진보나 보수처럼 편가르기가 아닌 소신에 따라 법률적 정의와 인간의 평등의 가치를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의 주장에 동의하고 지지하지만 <곤잘러스 대 카하트> 재판에서 대두된 임신 중지 권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으로 차별을 받는다는데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물학적으로 임신이 여성만 가능하다는 고유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여성의 권리로만 접근해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임신을 거부한다는 사실은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반면 유사한 임신 중지 사안인 <스트럭 대 국방부> 사건은 제시된 임신을 문제로 강제 전역을 규정하는 것은 성별에 대한 차별적 고정관념이며 이는 철폐되어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인 걸 보면 분명 그가 제시하는 쟁점을 이해하지 못한 채 헛다리를 짚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기야 내가 법을 뭘 안다고 이러나 모르겠다.

 

 

솔직히 책은 더디게 읽힌다. 요 근래 들어 이렇게 오래 책을 잡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평소 법조문을 접할 기회도 없거니와 딱딱한 문체는 되새김하듯 꼭꼭 읽게 된다. 그가 여성 평등을 주장한 '유산 집행인'에 대한 긴 의견서는 인상적이다. 여성이 유산 상속을 받는 것이 비합리적이이라는 편견을 어떻게든 '아니라고' 증명해 보이는데 집중하지 않고, '의심스러운 분류'가 어떻게 인종차별을 해왔는지 거론하면서 여성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하며 이런 유산 집행인에 어째서 남성'만'이 합리적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냐를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남녀 간의 '본질적 차이'는 존중받을 요소지 어느 쪽이든 폄하당하거나 기회를 제한받을 요소가 아니다." 51쪽

 

와우!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1996년 다수 의견에 이견을 보인 <미국 대 버지니아주> 소송에서 그는 남녀의 차이가 힘이나 신체, 성별의 차이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존중이라는 인격적 측면을 충분히 포함해 각 개인의 요소로 접근하고 있는 것에 흥분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권리를 누리는 데 있어 열악한 환경에 처한 소수자들을 이렇게 존중에 대한 요소로 주목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소수자라는 계층적 갈등은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

 

또한 <옴스테드 대 L.C.> 사건에서 다수 의견으로 보인 그의 입장은 현재 한국의 장애인 탈시설 운동과 맞물려 읽게 된다. 장애인의 삶이 시설에서 제한적이며 수동적으로 살아야 할 것이 아니라 개인 자율의 의지와 선택으로 지역사회에서 꾸려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기관을 포함한 공공의 영역에서의 차별은 당연히 금지되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미국의 인권 성장에 얼마나 많은 그의 노력이 있었는지 짐작이 되면서 대한민국의 인권은 어디쯤 와있을지 고민해 보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우리 법조계는 과연 소수자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작동하고 있는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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