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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소설/낭독리뷰] 플라멩코 추는 남자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by 두목의진심 2021.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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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으로 문학상 작품들을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익숙한 이름의 문학상이라 서평단을 신청해 읽었다. 7천만 원의 고료라는 게 흡족하지 않아 개인적으로 0을 하나 더 붙여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숨에 읽었다. 내용이 방대한 세계관을 지닌 서사나 깊은 철학을 요구하는 소설이 아니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리 빨려 드는 데는 분명 뭐가 있긴 있겠지 싶다. 내가 남훈 씨에게 너무 감정 이입을 한 게 아닌가 싶다가도 왠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살짝 가부장적인 아버지이면서 나보다는 가족을 앞세워 앞만 보고 달려온 중년의 가장의 감정이 스펀지에 물 스미듯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렇게 한 남자의 개인사가 가정사를 지나 진짜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이 눈물 난다.

 

소설은 3인칭 시점으로 투박하고 거친 남훈 씨의 자발적 은퇴를 기점으로 가부장적 가장의 모습에 조금씩 내려선다. 그러다 기억도 나지 않는 젊은 시절의 각오가 담긴 버킷리스트를 발견하면서 하나씩 풀어 가는 희망의 이야기다.

 

자연스럽게 사회적 관계망이 멀어진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녹아들면서 늙다리 청년이나 플라멩코, 스페인 강사와의 연결고리는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또 조금씩 자신의 '할 일'을 찾아가며 얻어지는 것들을 경험하면서 남훈 씨가 조금씩 말랑해지는 과정 역시 흥미롭다.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보이려 애쓴 자신의 마음을 늙다리 청년에게 들키고 나서야 평생 해 온 마음고생이 위로받는 장면은 괜스레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똑바로 설 작은 공간을 만드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된다." 105쪽

 

의미심장한 말이다. 남훈 씨가 평생 지녀 온 삶의 철학을 보여주는 문장에서 은퇴 이후 자신이 다져야 할 '설 공간'을 만들어 가는 일이 흥미롭게 이어지리라는 걸 예상하니 책장이 더 빠르게 넘어간다.

 

 

남훈 씨가 택배를 받고 나자 순간 울컥해져 훌쩍거렸다. 아내가 "이제 책을 보면서도 우느냐"라며 웃지만 아버지의 마음이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 남훈 씨는 플라멩코를 춘다. 스페인의 세비아 광장에서, 그 옆에서 지켜봤을 보연의 뜨거움이 나까지 달아올랐다. 소중해졌다. 이 책도, 작가도 앞으로 남훈 씨 나이가 될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지도.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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