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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낭독리뷰] 흐르는 눈물은 닦지 마라

by 두목의진심 2021.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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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이야기 아니, 가슴을 옥죄는 이야기라는 게 맞겠다. 군부 시절 그 혹독한 시절에 군인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에 가슴이 떨렸다. 나와 비슷한, 몇 해 정도 더해진 시절이어서 웃음기 걷힌 추억들이 부서졌다.

 

새마을 운동, 반공 포스터, 야간통행금지, 불심검문, 민방위 훈련, 국민교육헌장, 등화관제 등 오직 군부의 안위를 위해 국민을 빨갱이로 위협하면서 살을 찌운 군부는 조금씩 똑똑해지는 국민들을 다시 위협하려 삼청교육대를 창설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자 올림픽을 끌어들여 어떻게든 군부 연장의 꿈을 꾸던 그 시대였고, 부모가 찔러준 돈 봉투에 성적이 보살핌을 받는 교육과정을 받던 시절이었다.

 

난데없이 툭 솟아오르는 무시무시한 졸시의 어둠과 달리 감각적이고 화려한 색감의 원은희의 그림은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처연한 심연에 내려앉아 있으면서도 언젠간 빛을 볼 수 있으리라 희망했을까. 작가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어 더 침잠한다.

 

"산다는 건 늘 무언가와 대립하는 것이고 서로 대립되는 길항작용을 통해 한 걸음 나아간다는 것을." 76쪽

 

여성 혹은 페미니스트라 목소리를 높이지 않지만 억압과 강요의 시대 속 아버지라는 가부장 제도의 당연했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얼마나 부당하고 불편했던 것인지 그 진실을 알면서 외면해 왔던 남성들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꼬집으면서 그의 이야기는 시작한다. 아플 것이지만 아픔을 느끼기엔 모든 것이 결핍이던 시대가 위로될 정로로.

 

 

또 난데없이 선명하게 커진 듯한 문장이 글들 위로 솟아올랐다. 글을 쓰는 것은 질문하는 것이고 그 답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라는 구절은 투미해 확실하지 않지만 언젠가 글 대신 철학으로 대치된 문장으로 읽은 듯하다. 한데 그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찾지 못한 삶에 대한 정의로 귀결되는 것 같아서 잠시 고개를 들게 했다.

 

 

"비탈길 위에 사는 여자는 웬만해선 자신의 비탈을 보여주지 않는다." 249쪽

 

언제부턴가 아버지를 벗어나 이어지는 그의 삶에선 줄곧 이성을 갈구하면서도 결핍을 피하지 않는다. 그런 작가의 결핍된 삶이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짐작할 수 있는 조각들이 널려 있어 당시 시대가 요구하던 청춘들의 모습에서 여성의 또 다른 아픔이 선명해진다.

 

 

아버지의 당연한 무능과 엄마가 떠안았던 절박한 책임감의 무게 그리고 그런 부모를 보며 이를 갈고 분노를 키운 자식들의 불안이 낭자하게 흘렀던 40년은 훌쩍 지난 이야기가 오늘, 어떻게 읽힐지 가늠이 안 된다. 그래서 작가의 이 내밀한 일기를 곱씹으면서 강추하게 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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