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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감성9

[에세이/낭독리뷰] 유럽에 서 봄 스위스 5월이었던가. 20년 전 출장으로 스위스의 한 도시에서 스치듯 하루 묵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 스위스를 경유 프랑스 앙시로 가는 길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아침이 기억에 담겨 있다. 그리고 드라마 의 리정혁 대위가 피아노를 연주해 주던 그림 같은 곳도 여기 이젤발트 아니던가. 작가에게 그곳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선물받았다. 서평도 필요 없다고 했다. 그저 읽어 주면 그걸로 족하다고 했다. 그래서 부담 없이 미루기만 하다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읽을 책을 고르려다 푸른 하늘과 호수가 맞닿은 한쪽에 만년설이 덮인 표지가 유혹하듯 눈길을 잡아끌었다. 스위스다. 이제는 소녀가 아닐지 모르는 하이디가 여전히 산으로 들로 뛰어다녀야 할 것 같은 곳. 그렇게 '만년설을 이고 서 있는 차가운 냉정과 사.. 2021. 10. 15.
[에세이] 나는 철없는 변호사입니다 겁많고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일이나 따돌림 등 유년의 기억들로 시작하는 짧은 에피소드들을 줄줄이 비엔나처럼 엮었다. 근데 이게 흥미롭게 이어지다가 서둘러 마무리를 짓는 통에 2% 부족하게 아쉽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저자의 이야기에서 알지만 또 새롭게 느끼는 건 누구에게나 '자신이 한심하고 짜증나는 인생'이라고 여기는 시기가 있겠다, 싶다. 저자의 고교 생활만큼이나 버라이어티 했던 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운동 한답시고 수업을 밥 먹듯 빼먹기도 하고 시합을 핑계로 동대문 흥인 시장을 기웃대던 그 시절. '고작' 이런 인생을 살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럴싸한' 인생을 꿈꾸거나 노력했던 것이 아니어서 쉽게 저자의 인생에 빠져 들진 못했다. 전 세계 어딜가나 잘 알지도 모르면서 타인의.. 2021. 8. 7.
[소설/낭독리뷰] 투마이 투마이 그의 산티아고 고행길을 함께 걷는 듯했던 여행 에세이를 읽은 후 독특한 그의 이름을 기억했다. 그리고 꽤나 독특했던 좀비 소설 스노우 글로브에 그의 이름은 각인됐다. 두 번째 소설집이라니 읽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11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은 '삶의 희망'이라는 제목은 이 시대, 아니 현생은 망했다고 읊조리는 우리 모두가 찾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슴 벌떡인 것과는 달리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명확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엉망이 돼버린 인생에 대한 상실이 끝내 회복되지 못하는 것과 투마이가 관계있을까? 이미 귀신이 된 채 같은 구간을 맴돌아야 하는 택시 운전사는 어떻고? 아포피스는 그 열정적 사랑의 불씨를 만들기 위해 지구로 35,000km의 속도로 맹렬하게 돌진하는 걸까? 지구의 종말을 예측하면서.. 2021. 7. 4.
[에세이] 제주에 왔고, 제주에 살아요 - 세 여자의 진짜 제주살이 이야기 표지에 '진짜' 제주살이라는 말이 택시를 잡듯 세차게 흔들어 댔다. 12년 전 제주에 갔고, 제주에 머물렀던 기억에 제주살이라는 말은 언제 어디서고 홀린다. 인생을 통틀어 행복이라는 공간적 의미는 그때 3년뿐일지 모른다. 그래서 난 여전히 그 공간 속에 머문다.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육지로 쫓기 듯 돌아온 나는 가짜로 살았던 걸까? '불턱' 깊은 바닷속 숨을 죽여야만 했던 해녀들이 뭍으로 나와 죽였던 숨을 틔우는 곳이라니 미처 몰랐다. 오가며 뿔소라 흥정만 해봤지 그네들의 삶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 해녀 해볼까?"라고 묻던 아내의 물음이 그렇게 쉽게 해서는 안 될 것이었음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어느 날 표선의 바다를 찾는다면 꼭 들러 보리라 다짐한다. 5살,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가 하나 반은 더 .. 2021. 1. 25.
[소설] 커피는 바꾸었지만 인생은 여전하네요 "이런 날은 뭔가를 잃어버리기 마련이지." p45 '십상'이 아니고 '마련'이라니, 단정적인 암시처럼 나 역시 읽는 동안 군데군데 일던 문장을 놓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피상적으로 펼쳐지는 일들이 개연성 없이 흩어져 떠다니며 퍼즐처럼 누군가 맞춰주길 바라는 것처럼. 그런데 굳이 맞춰 볼 기분은 들지 않는다. 그냥 읽는 것으로 충분히 피로하다. 묘한 소설이다. 딱히 음습하지도 긴장되지도 그렇다고 흥분이나 기대감 역시 들지 않지만 읽기를 멈추기는 뭔가 찝찝한, 오호 그렇다. 찝찝함! "넌 네가 사랑할 사람을 이미 잃었어." p71 부조합. 섹스를 '하는'데서가 아니라 거침없이 '말하는'데서 어른이 되었다고 상징하는 작가의 말에서 떠오른 단어다. 뭔가 말하고 싶은 주제를 쏟아내지 않고 빙빙 돌려 오히려 수줍.. 2020. 10. 4.
[심리] 심리학으로 사회를 바라보다 인간 행동의 역동을 심리적 측면으로 분석하는 심리학을 과학이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공감한다. 이 책은 10대, 마케팅, 사회, 사이버 심리의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 안에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누구나 겪게 되는 일상의 심리를 간단하고 쉽게 정리해 주면서 필요에 따라서는 치료와 관련한 조언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초등 6학년인 아들이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 때문에 염증까지 생겨 피부과 치료를 받고 있는 터라 어떤 심리적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는데 강박에 기초한 불안이라니 뭔가 수를 내야겠다는 조급함도 든다. 엄한 아빠 때문에 아이가 고생 하나보다. 이론을 소개하면서 이와 관련한 심리적 문제를 개인의 배경이나 특질 같은 측면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만들기도 하면서 다양한 사례를 .. 2020.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