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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낭독리뷰] 유럽에 서 봄 스위스

by 두목의진심 2021.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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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었던가. 20년 전 출장으로 스위스의 한 도시에서 스치듯 하루 묵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 스위스를 경유 프랑스 앙시로 가는 길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아침이 기억에 담겨 있다. 그리고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리정혁 대위가 피아노를 연주해 주던 그림 같은 곳도 여기 이젤발트 아니던가.

 

작가에게 그곳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선물받았다. 서평도 필요 없다고 했다. 그저 읽어 주면 그걸로 족하다고 했다. 그래서 부담 없이 미루기만 하다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읽을 책을 고르려다 푸른 하늘과 호수가 맞닿은 한쪽에 만년설이 덮인 표지가 유혹하듯 눈길을 잡아끌었다.

 

 

스위스다. 이제는 소녀가 아닐지 모르는 하이디가 여전히 산으로 들로 뛰어다녀야 할 것 같은 곳. 그렇게 '만년설을 이고 서 있는 차가운 냉정과 사람들의 반짝이는 열정'이 있다는 곳에 비행기를 탈 수 없다면 책으로라도 가보고 싶었다.

 

"만년설이라는 거대하고 아득한 단어를 실물로 만난다. 검고 깊은 주름과 그늘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시공 사이에 있다." 10쪽
"충분한 사진은 있을 수 없다.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설명할 단어는 더욱 찾지 못한다. 영원을 누비는 시간과 공간의 광경을 느끼며 서 있는 것이 최선이다." 10쪽

 

에세이라기보다 사진집에 가까운 스위스의 곳곳이 작정이라도 한 듯 숨을 멎게 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절경들을 죽기 전엔 볼 수 있을까, 눈물이 날 지경이다. 게다가 암벽을 뚫고 핀 이름 모를 꽃처럼 사진 사이사이에 비집고 자리 잡은 그의 문장들은 한참 머무르게 하는 아득함이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보여 준다, 라니 난 지금 수네가 파라다이스 위에 떠있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은 현재이기도 하지만 미래에 가깝다." 73쪽

 

여행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눈에 담는 순간 잊지 못할 추억이 되니 미래가 아닌 과거에 가깝지 않을까. 한데 그는 여행 속 자신은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다며 미래에 의미를 담는다. 그래서일까, 다 담지 못한 감격의 순간을 '다음'이라는 기회에 넘겨줘야 하는 아쉬움 역시 미래다.

 

여행작가일까 아니면 시인일까. 그도 아니면 글을 짓는 일을 할까. 그의 직업이 궁금해져 버린다. 때론 길을 잃은 곳에서 두려움 없이 새로운 길을 발견 해내는 일은 쉽지 않을 터인데 그의 글에선 되려 길을 잃는다는 것이 흥분에 가까운 설렘과 차분함이 동시에 전달된다. 그리고 가슴을 거하게 흔들어 놓는 글이 그 자리에 있다.

 

 

"샤갈의 작품이었다. 태양과 대지의 아들이 한숨 같은 모래를 녹여 유리를 만들고, 인간의 영혼이 흘러들어 노래 같은 색이 입혀졌다. 날마다 같지만 다른 온도의 태양이 품어 주면 그때야 보게 되는 샤갈의 스테인글라스이다." 102쪽

 

감탄이 절로 흐르는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태양을 고스란히 머금은 채 여행자를 맞는 프라우 뮌스터의 찬란함이 눈앞에 있는 듯하고, 어느 순간 멈춰버린 손목의 시간이 하필 체르마트라는 데에 감격하고 몽트뢰에서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가 들릴 것만 같은 그의 여행에 동반자가 된 듯한 게 행복할 정도다.

 

 

그가 '감히'라는 뜻밖에 단어를 선택할 정도로 고품격처럼 보인다던 골든패스라인의 클래식 기차 내부는 저품격으로 후진 내 눈에는 가는 동안 허리가 대나무처럼 꼿꼿해질 것만 같아 보는 것만으로도 불편했다. 저게 좌석이라고?

 

 

그의 여행이 끝나는 순간 여행의 취향을 생각한다. 숨어버린 꾀꼬리를 찾겠다는 듯 숨가쁘게 떠도는 여행과 가느다란 밧줄 하나에 옴짝달싹 못하고 정박 중인 거대한 선박처럼 느린 시간 속에 있는 것 중에 나는 어느 쪽일까. 아마 후자겠지 싶다. 아무래도 내겐 숨가쁜 여행은 지침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기억이 남겨진 곳은 그 어디라도 시간이 멈춘듯하여 상관없겠다 싶다.

 

이 책은 그의 발길을 따라 하이킹과 여행으로 나누어 스위스를 소개한다. 마지막은 일정과 경비, 예약으로 부록을 마무리한다. 한데 눈부신 여행지의 풍광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것쯤으로는 이 책을 단정짓기엔 부족하다. 보는 것만으로 감격이 휘몰아치는 스위스의 경치만큼이나 작가의 섬세하고 황홀한 문장은 두루두루 간직할 수밖에 없다. 그는 눈앞에 스위스를 가져다 놓았다. 그래서 그의 글과 사진을 두 번 읽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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