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큼이나 시커먼 표지에 을씨년스러운 건물이 묘한 호기심을 부추긴다. 역시나 소설은 활자에 생명력이 있는 듯 독자의 호흡을 잡아끌며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어떤 이유로든 민의 불안은 내게 전염된다. 숨죽이고 순식간에 읽어 내려가게 된다. 메모하는 걸 잊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이렇게 찐한 미스터리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다. 최소한 최근에는.
평온한 날들이라는 믿음과는 다르게 민의 정신세계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갑작스러운 은수의 죽음 이후 기이한 일들은 민을 괴롭히고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민과 남편, 민과 까망이를 둘러싼 이 미스터리한 관계에 집요하게 파고들더니 소설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짧게 등장하고 종교와 철학을 탐미한다. 심지어 난해하고 심오하다.
"중요한 건 그 순간에 내가 거기 있었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했을 뿐이야.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143쪽
왜 구멍 가게 노인의 말이 떠나질 않는 건지 모르겠다. 선과 악, 순수와 타락, 이성과 감정…인간이 태초부터 갖게 된다는 원죄를 둘러싼 질문들 그리고 심판의 날 그건 분명 복수는 아닐 것이다. 민은 심문관이 된 것일지도.
"운명은 정해진 게 아니라 꺼내는 순간 결정되는 거예요." 213쪽
처음부터 집안은 혹은 가족의 경계가 민의 영역이었는지 순간 흐릿해졌다. 새벽 2시, 민이 헌 옷 수거함에서 검은 모자를 쓴 순간 모든 것은 믿을 수 없게 됐다. 본 것을 믿는 것인지, 믿는 것을 보는 것인지 진실을 진실이라 믿을 수 있을까.
결국 민은 자신의 존재를 먹어치우는 우로보로스였던가. 민과 흰나비를 마주한 순간 어쩌면 뻔함 혹은 유치할 감상일지 모르지만 소름 돋고 한기가 들었다. 강렬한 소설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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