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10년 전 영화인 이 영화를 알게 됐다. 이토록 뜨겁고 이처럼 열정적인 영화를 그때 왜 몰랐을까? 제이크 질렌할과 앤 해서웨이의 크고 깊은 눈을 좋아하는데 그들의 눈이 이렇게 시린 영화를 하마터면 놓칠뻔했다니.
감독은 영리하다. 파킨슨병을 앓는 젊은 여인의 삶을 다루면서도 무겁고 절망스러울 것이라는 그래서 눈물 콧물 빼는 뻔한 신파일 것이라는 관객의 예상을 시종일관 성 도착증 환자쯤으로 봐도 무방할 만큼 자유분방한 제이미(제이크 질렌할)를 전면에 내세워 살짝 3류 저질 로코쯤으로 포장한다. 한데 여기에 시크하지만 더 자유롭고 거침없는 매기를 등장시켜 수위 높은 노출을 곁들여 그렇고 그런 영화로 끌고 간다. 뭐지 이 영화?
그런 생각을 할 때쯤 감독은 딱히 특별한 반전 다운 반전도 없이 순식간에 둘의 절절한 사랑에 푹 빠지게 만든다. 정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파킨슨을 앓고 있는 매기는 자신의 삶으로 훅 하고 들어온 제이미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애써 동정으로 단정하며 밀어내기 급급해 한다. 하지만 제이미는 그런 상황에도 자존감 높고 씩씩한 매기에게 빠져들기만 한다. 둘은 점점 서로에게 스며들고 제이미의 성공으로 기회의 도시 시카고로 향한다.
우연히 알게 된 파킨슨 환자의 자조모임에서 매기는 자포자기한 자신의 삶이 그저 삶의 한 부분이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같은 파킨슨 환자들에게서 깨달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비로소 행복해진다. 반면 같은 공간에서 제이미는 파킨슨 환자 남편의 충고에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로소 자각한다.
같은 시공간에서 두 사람의 공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싶다. 나는 아내를 생각한다.
제이미는 당장 매기의 치료를 위해 인터넷에서 치료법을 찾아 헤매고 전국의 전문의를 찾아 떠돈다. 매기는 자신 때문에 점점 예민해지고 웃음을 잃는 제이미를 보며 힘들어하다 결국 떠난다. 그렇게 둘은 각자의 인생을 살기로 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감독의 자세다. 사실 영화는 굉장히 아프다. 매기는 26살의 재능 있는 화가였지만 파킨슨에 걸려 삶이 피폐해졌고, 제이미는 똑똑하고 재능 많은 아이였지만 강압적인 가정환경에 주눅 들어 자존감이 바닥인 채로 대인관계에 진심을 담지 못한다.
이렇게 이런 상처 입은 두 사람을 통해 감독은 '사랑은 견디는 게 아니라 채우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질병으로 낮은 자존감으로 스스로 망가지는 법을 선택한 두 사람의 삶의 태도에서 '사랑'은 변화를 요구한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매력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옆에 있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 멋진 말을 듣는 순간 울컥했던 감정은 순간 요동쳤다. 삶이 계속되는 한 굳이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사랑은 그 사람 자체로 온전히 바라볼 때 완전해진다는 메시지는 내 장애를 장애로 보지 않고 옆에서 든든히 있어주는 아내의 얼굴을 한번 보게 된다. 그래서 먹먹해진 가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 영화 미칠 듯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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