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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일본문학/에세이] 매일매일 좋은 날

by 두목의진심 2019.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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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아무리 이해하려 애를 써도 그때가 올 때까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깨닫는 순간이 오면 그 사실을 덮고 감출 수는 없게 된다."


이 책은 25년간의 다도茶道에서 얻은 것에 대한 이야기다. 다도 집, 다케다 선생의 집을 묘사는 슥슥 읽을 수 없다. 다도를 하는 것처럼 괜히 조용히 느릿하게 집중해서 읽게 된다. 그리고 눈을 감게 되고 상상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비가 흐릿하게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p7


벚꽃에서 녹음이 우거지고 푸름과 붉음이 공존함을 지나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인 나날들에 대한 기록이 시작부터 마음이 평온해진다. 20대에 시작해 30대를 거쳐 40대에 이르는 시간은 계절이 순리를 따라 도는 것처럼 천천히 그러나 우아하게 흐른다. 다도는 어쩌면 계절과 시간의 기록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상대방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제로' 상태의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거추장스러운 짐을 진 채 이 자리에 있었다. 마음 한구석에서 '이 정도쯤이야', '난 잘할 수 있어' 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얼마나 교만한 태도였는지." p54




물을 어떻게 떠야 하는지 담은 물동이를 어떻게 내려놓아야 하는지 문지방은 어느 발부터 넘겨야 하는지 다다미 한 칸에 몇 걸음을 걸어야 하는지 따위의 형식적인 것들에 얽매여야 하는 다도가 아닌 '형태'를 갖추고 '마음'을 담는다는 다도는 원래 그럴 수 있는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리코가 줄곧 물었던 이유에 대해 다케다 선생이 했던 "이유 같은 건 상관없어"라는 대답이 어쩌면 이해될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따라 빗소리를 낸다.


타닥타닥 타닥타닥.

토독토독 토독토독.


열다섯의 히토미에게 또 하나를 배운다. "잘 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니 잘 하게 되는' 것이라는 깨달음. 또 일기일회一期一會, 일생에 단 한 번. 늘 만나는 사람도 만나는 지금은 단 한 번뿐이라는 것. 다음은 기약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은 깨달음이 온다.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쁜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든 저마다 좋은 것이다. 인간에게는 그 양쪽이 모두 필요한 법이다." p237


계절은 다름, 덥다거나 춥다거나 비가 와서 나쁘다거나 하는 것이 아닌 그저 그래서 좋은 것일 수 있는 그래서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 될 수 있는 일일시호일을 떠올리며 어제 소리 없이 흩날리던 눈가루를 떠올린다.




"잊고 있기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p249


정해진 규칙과 보이는 것인 데마에가 보이지 않는 인생의 '틈'을 열어 무아지경에 이르게 한다는 깨달음이 담뿍 담겼다. 오감을 자극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또 어떤 느낌인지 이 책이 분명히 알게 해준다. 읽는 것이 아닌 보고 느끼고 상상하게 되는 그런 책이다.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아주 많이.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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