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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교양/에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by 두목의진심 2018.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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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이라니. 인생은 열심히 혹은 노오오오오오력 해야 하는 걸로 배우고 자란 탓에 이 작자의 '노력하지 않는 삶'에 대한 실험이 배부르거나 미친 '짓'으로 선을 그었다.

저자보다 딱 9년 더 산 시점 그러니까 작가가 사표를 던진 시기가 마흔을 두 달 남긴 시기였다고 하니, 난 쉰을 두 달 남긴 시점에 사표를 던지는 대신 이 책을 들고서 야멸차게 부러워하고 있다. 나도 하고 싶다. 저자가 해버린 야매 득도.

괴테가 어떤 상황에서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그딴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언제 숟가락 놓게 될지 모르는 마당에 속도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생각도 있다. 어쨌거나 방향이 중요하다는 걸 출발 전에 깨닫는다면 대박 좋겠지만 이미 출발하고 나면 방향을 바꾸는 일은 꽤나 수고스럽거나 빼도 박도 못하고 끝을 봐야 하지 않을까.

목적지는 보이지도 않는데 가는 방향도 잊거나 목적도 잃어버리면 어떨까. 내 나이 쉰. 목적도 방향도 잃은 채 탄력받은 속도만 존재한다고 느낀다. 대책 없이 흔들리는 마흔도 지난지 오래라 사표도 떨어질 생각도 않는다. 그래도 나도 참 많이 노오오오오오력 하지 않는 삶을 실험하고 싶다. 격하게.



"현명한 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p55


오래전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노동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거의 대부분 미국이나 일본 작품을 하청 받던 시기라 국내 창작물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 결국 대박의 꿈을 꾸며 다니던 회사를 나와 스튜디오를 확 차려 버렸다. 미쳤지. 내가. 결혼하면서 부모님이 얻어주셨던 전세 아파트를 빼서 벌린 짓이었다. 그때 아내는 만삭이었다. 불안했지만 '망해도 젊을 때 망해봐야 다시 재기한다.'라는 핑곗거리를 앞세워 부모님과 아내를 설득했다. 근데 진짜 망했다. 그리고 망하면 젊을 때고 늙을 때고 재기하기 어렵다는 걸 배웠다. 이건 진리다.

나는 용기가 넘쳤던 걸까. '아, 난 사업가 그릇이 아니다.'라는 결론이 드러나자마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깨끗하게 포기했다. 그래서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사업은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근데 여전히 내 길이 뭔지 잘 모른다.

이 책은 인생을 어떻게 임하는 자세를 알려준다. 진지한 궁서체보다는 약간 힘을 뺀 자연스러운 필기체 같은. 게다가 진지한 삽화체가아니라 약간은 어수룩한 만화체 같은 그림도 좋고 더구나 글솜씨도 마음에 든다. 여러모로 기분 좋은 책이다. 게다가 홀딱 벗고 자신을 드러낸 작가의 자세가 맘에 들었다.



"무언가를 해야만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더 큰 의미가 있다. 나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p100


이런 시간은 나도 필요하지만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좋은 걸 알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어떤 건지 잊어버린 것 같은.



"우리는 어느새 피곤한 어른이 되어버렸다." p119


<넌 나고 난 너야>를 읽는다. '어떻게 이게 이해가 되지?'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어린 시절이 추억이 아니라 떠올려야 할 만큼 기억하기 싫은 지옥이었던 가정불화였다니.

어떻게 늘 같은 모습의 게으름과 술에 취해 폭언과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고작 나이 마흔에 도달했다고 그런 아버지의 기억이 순화되고 이해되고 공감이 될까? 그저 책에 활자로 옮긴다고 막 지옥이 천국까지는 아니어도 견딜만한 것쯤으로 바뀌나? 허 참.

나는 쉰이 된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가 이해가 안 된다. 다만 작가의 아버지와는 조금은 덜한 거라면 폭력을 허구한 날 휘두르지 않았다는 정도? 늘 술에 취해 있고 일하기는 싫어하지만 희한하게 부지런한 정도? 아 폭언은 장난 아니시지.

어쨌거나 난 여전히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작가도 그랬던 것처럼 '난 아버지처럼은 안 살겠다!'라는 다짐으로 산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지만 열심히 일하려 애쓰고 술도 안 마시고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는다. 아 폭언은 좀 장난 아니지. 암튼 아버지와는 다르게 살겠다는 각오는 실천하며 산다. 그런 면에서 나는 불효자다.



"꿈이 있다는 건 분명 설레는 일이다. 하지만 꿈을 향해 긴다는 건 혹독한 고통의 길이기도 하다. 그 고통을 다 참아내고 끝까지 가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p195


적당한 쿨함 그 속에 담긴 약간 보다 쪼금 더 진지함도 있고 살포시 유머도 제법 갖췄다. 그래서 고리타분한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막 위로만 해대는 심리서도 아니다. 빨간 피부의 남자가 빤쓰 하나만 걸치고 홀가분하게 활개를 쳐대도 전혀 야하거나 심지어 섹시하지 않지만 묘하게 매력 있는 느낌이랄까. 어쨌거나 적당히 재밌기도 위로가 되기도 하다.



"내가 경험하는 하나의 생으론 이야기가 많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이해도 부족하다. 삶이, 세상이, 타인이 이해가 되지 않아 힘들다. 그래서 인간은 이야기를 발명했는지도 모른다. 난 이 발명이 참 좋다." p275


"회는 날로 먹어도 맛있는데 인생은 날로 먹으면 왜 안되냐"라는 그의 절규가 훅 하고 공감이 돼서 한참 머뭇 거리 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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