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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리뷰

[부산행: Train To Busan] 지켜야 할 것에 대한 이야기

by 두목의진심 2016.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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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기가 더 무서워!"


두려움 앞에 극에 치닫은 사람들의 이기심. 무섭다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을 지경의 아비규환이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좀비 영화를 즐겨 하지 안을뿐더러 안 그래도 국가 재난 대응에 분통이 터지는데 영화까지 그런 분함과 답답함을 느낄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국내 재난 영화는 피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출연했음에도 이런 이유로 <부산행>은 보지 않았다. 그런데 개봉한지 꽤나 지났음에도 여기저기 영화 관련 프로에서 다양한 스포를 쏟아낸다. 잘 만들어져서 그런가 아니면 생각보다 관객의 수가 적어 그런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보게 됐다.

뭐랄까. "좋다", "나쁘다"로 구분하기에는 뭔가 미온적인 느낌이 있달까. 국내 영화에서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생존에 치명적이라는 "바이러스"로 벌어지는 국가적 재난과 사람들의 아비규환은 여러 영화에서 다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매개체가 되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경로를 서로 물고 뜯고 씹고 하며 옮기는 좀비식 영화는 처음인지라 나름 신선했다 느끼지 않았을까. 여기에 외산의 좀비 영화와는 좀 다른 점이 자국의 문제를 전 세계적으로 퍼트려 온통 세계적인 환란을 영웅을 등장시켜 자신들이 해결한다는 영웅 놀이로 마무리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부산행>은 영웅적 히어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지켜야 할 사람"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좋다.

인간 말종의 끝판왕으로 지독한 이기심을 보여준 용석(김의성)의 행동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객차 안에서의 대치 상황은 자신의 이기로 인간 좀비와 사람의 대치가 아닌 "나"와 "우리"의 문제였던 것이다. '내가 살아야 하므로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는 그런 극도의 이기심이 빚어내는 인간 본성의 처절하고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들여다 보아야 하는 불편함을 준다. 그런 점은 필사적으로 피난처에 도달했지만 이미 생존을 확인한 이들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이들은 그저 잠재적 좀비일 뿐이다. 여기에 '문'은 생사를 결정하는 최후의 보루이므로 그들은 이제 막 도달한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하려 한다.

열어주지 않은 '문'을 가까스로 열고 살아남은 "우리"를 갈라놓는 상황에서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남아야 하는 문제가 아닌 함께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이해는 하지만 꽤나 마음이 불편해진다. 여기에 딸에게 조차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 인물로 설정된 석우(공유)를 통해 감독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해지면 질수록 석우의 개과천선에 결국 인간성 회복이라는 조그마한 '희망'을 살포시 던져놓은 그의 바람이 느껴진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좀비들과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 위해 끝도 없이 잘못된 정보를 진실인양 발표하는 정부의 무능 앞에 "지켜야야 할 사람들" 앞에 당당히 몸을 던지는 상화(마동석)의 거침없음은 짜릿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영화 흐름을 거스르는 부분이 없지 않음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인간이 극도의 두려움 앞에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때 초인적인 무언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랄까. 어쨌거나 영화가 전체적으로 매끈한 영화는 아니지만 남성이 주류인 세상에서 지켜야 할 것이 여성이라는 점과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부양 책임을 어깨에 떠 얹은 무거움인 양 표현하는 상화의 대사나 야구부 여신인 자신 진희(소희)에게 간택 받은 영국(최우식)은 감사해야 한다는 대사 등은 극의 전개에 개연성을 준다기 보다 감독의 생각을 녹여내려 하다 오히려 툭 불거져버려 어정쩡하게 흐름을 흐린다. 그럼에도 터널을 빠져나오는 세 사람의 생존이 희망을 담는다는 점은 새로운 지향점을 찍는다는 것은 이 영화의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국가는 국민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한다.

 

"이들은 누구를 노려 보고 있는가!"

 

 

글 : 두목

이미지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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