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미끼를 던졌고 나는 미끼를 제대로 물었다."
여기저기 입소문이 자자했던 <곡성>을 봤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으리란 생각도 있었고 나홍진 감독의 전작을 보면서 그의 철학에 대한 영화적 표현이 잔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에서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잔인한 장면이 없음에도 공포스러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인터뷰를 보았을 때 잠시 흥미롭긴 했지만 이일 저 일로 기억 속에서 밀어내졌었다.
그러다 TV 예능 프로에서 영화를 패러디한 내용을 보면서 다시 내용이 궁금해졌다. "감독은 미끼를 던져분 것이고 나는 미끼를 물어분 것이다." 영화는 감독의 말대로 전작처럼 잔혹스럽게 때려죽이거나 심한 폭력적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심장을 쫄깃해진다. 인간적인 두려움이나 공포는 결국 잔혹스러워야만 만들어지는 건 아닌 게 확실하다. 이 영화 충분히 공포스럽고 두렵다. 그리고 너무 훌륭하다. 감독의 연출력이나 배우들의 존재감은 예술이다.
추리 영화가 아님에도 끊임없이 감독이 던지는 미끼를 물어보겠다고 관객은 존재하지 않은 '범인(귀신)'의 정체를 밝혀보겠다고 상영 내내 몰입하게 만든다. 결국 영화가 끝나고 '범인'은 드러났는데 관객은 화장실을 다녀왔음에도 시원하지 않은 그런 상태가 된다. "이건 뭐지? 그러니까 누가 귀신인 거야? 무명(천우희)은 뭐지?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귀신이야? 그럼 일광(황정민)은? 종구(곽도원)은 죽은 거야? 뭐지 이 영화?" 이런 궁금증은 해갈되지 않은 갈증과 같이 터져 나온다.
토속신앙인 무속인과 서양 신앙인 가톨릭의 종교적 만남. 여기에 종구를 중심으로 종구와 무명, 종구와 외지인 그리고 종구와 일광의 만남은 묘한 긴장감과 함께 미끼를 던진다. 과연 인간의 탈을 쓴 귀신의 소행인가? 결국 "너희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고 제자들에게 믿음에 대한 의심을 경계할 것을 예수의 가르침이 이 영화의 모티브가 아닐까. 극한의 불안과 두려움 앞에 인간은 믿음 대신 "의심"을 품고 그로 인해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 과정에 인간의 나약함과 두려움은 극대화되고. 그런 인간에게 예수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시키 듯 구멍 뚫린 손바닥을 펼쳐 보인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지탱해 주던 딸 효진(김환희)이 귀신에 씌우면서 종구는 귀신에 대한 존재를 의심하면서 밝히려고 필사적이 된다. 봐야 믿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는 무명과도 외지인과도 일광과도 마주 섰지만 마음속에 누가 귀신인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심으로 혼돈에 빠지고 결국 그렇게 사랑하던 가족을 잃는다. 닭이 3번 울기를 기다렸다면 무명의 미끼를 물었다면 가족을 지킬 수 있었을까. 그리고 또 하나 인상 깊은 장면이 있는데 종구가 아닌 이삼(장도윤)이 귀신(악마)의 존재와 맞닥뜨린 장면이다. 왜 종구가 아니라 이삼인가. 줄곧 귀신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갑자기 동굴 속 이삼과 외지인의 대면에는 악마라는 표현인가는 예수와 제자(여기서는 이삼이 사제는 아니지만 부제였다. 감독은 어쩌면 사제보다는 믿음이 아직은 덜 성숙한 부제로 완화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의 대화를 악마(외지인)와 사제(이삼)의 관계 설정으로 종교적 관점을 살짝 비틀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악마로 이미 믿고 있으니 나는 악마다."라는 말과 "니 뜻대로 내려가게 될 줄 아는가"라는 외지인의 말은 이미 인간이 두려움에 의심을 하게 되면 그것은 진실처럼 되는 믿음이라는 뜻이 아닐까. 감독은 관객에게 결국 귀신이나 악마는 인간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 소문에 대한 두려움이 의심을 만들고 귀신(악마)를 만드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종래 보기 드물 게 아름다울 정도로 훌륭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놓치면 정말 후회할뻔한 영화였다.
글 : 두목
이미지 : 다음 영화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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