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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의 프리퀄이라는 <서울행>은 같은 감독의 다른 이야기라는 점이 흥미롭다. 부산행이 물고 뜯고 씹고 맛보는 식욕 왕성한 좀비들을 뚫고 유일한 희망의 땅인 부산으로 가는 과정에 인간성 회복이라는 점을 이야기했다면 서울행은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은 소수자를 넘어 결국 시민이라는 점을 연결 지으며 시종일관 어두운 단면을 그리고 있다. 감독은 시작과 동시에 강렬한 첫 대사는 다름 아닌 국가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을 소음에 묻어 어슴푸레 들려준다.
"결론은 보편복지 라니까"
사람들이 무차별하게 좀비로 내몰리는 상황에 시민의 안전은 공권력이 지켜주지 못하고 결국 바리케이드로 생사의 선을 긋는다. 이 장면은 부산행과 약간의 대비를 보이는데 부산행은 터널이라는 공간을 넘어오는 생존자에 대한 포용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서울역은 바리케이드를 넘어오는 생존자들을 향해 물 대포와 총격을 해대며 애초에 생존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이런 점을 본다면 혜선이 연결 고리라는 점을 제외하면 "왜 서울역이 부산행의 프리퀄이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서울역에서 잃어버린 인간성을 부산행에서 회복한다는 이야기일까. 어찌 보면 좀비의 등장만 같고 전혀 다른 처절함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서울역>에서 사지로 내몰리는 소수자의 희망은 다름 아닌 '집'으로 묘사된다. 가출을 한 혜선(심은경)이 기웅(이준)을 만나 원조 교재로 생계를 이어나가며 돌아가고 싶은 곳은 다름 아닌 집이다. 여기에 석규(류승용)의 등장과 그의 입을 통해 밝혀진 아빠의 실체는 실낱같은 희망은 애초에 없음을 상기 시킨다. 사실 집은 안전한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혜선이 그토록 두려움에 떨면서 가고자 했던 곳은 사실상 집이라는 공간적 의미보다는 안전한 공간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을 지켜 줄 부모가 있는.
그리고 혜선의 위험은 좀비로부터 가 아닌 포주(사람)인 석규였으며 그런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려 했던 기웅은 결국 죽는다. 그리고 안전한 공간이라 생각한 집(모델 하우스)는 좀비들로부터는 안전한 공간이었지만 석규와 같은 공간에 존재한 후 위험에 내몰리고 결국 모두 좀비가 된다는 비참한 결말이 씁쓰레하다. <서울역>은 캐릭터들의 모션이 자연스럽지 않은 점은 옥에 티라고 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가 탄탄해 몰입도에 방해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시작은 결국 절망이었다."
글 : 두목
이미지 : 다음 영화 "서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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