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없는 세상에서 풀면 척 답을 내놓는 수학 공식처럼 인생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인생도 그런 공식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드는 제목이다.
상담과 집필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주며 긍정 바이러스를 전파했던 상담가 故양순자 선생이 65세에 쓴 <인생 9단>을 재발행했다. 그는 10년 전, 대장암으로 73세에, 삽화를 그린 둘째 사위였던 박용인 작가 역시 작년에 생을 마감했다 한다. <어른 공부>에 이어 읽게 된 그의 두 번째 책으로 아마 기억에 오래 남겠다.
"나잇값을 못 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단 말이지. 이런 사람들은 나이를 먹은 게 아니라 그냥 늙은 거야. '어른'이 아니고 그냥 '늙은이'란 거지. 나이가 들수록 쌓이는 경험과 지식을 잘 버무려서 소화를 해야 자꾸 성숙해지는데, 그걸 못했으니까 고집불통에다가 욕심만 많은 늙은이가 돼버리는 거라." 25쪽
나이 듦에 대한 작가의 조언에 마음이 덜컹했다. 젊음에 방황이 있다면, 나이 듦엔 지혜가 있다는 말에 이미 반백이 되도록 병아리 오줌만큼도 지혜 모으지 못한 채 그냥 늙어버리기만 한 것 같아서 속이 씁쓸하다.
빵만 먹고 후다닥 도망쳐 버린 어설픈 도둑 이야기에 울컥해져 버렸다. "재수 없는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이 일어난 것뿐이야. 매일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일인데, 그게 당신만 비켜 갈 거라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냐며 나한테도 왔네" 하고 담담히 받아 들이라는 말에 꼭 34년 전, 뜬금없이 장애를 입고 허우적대던 내 마음이 기억났다. 그때도 지금도 사고나 질병 기타 그밖에 수많은 이유로 장애는 누군가에게 찾아가고 있었을 텐데 그걸 모르고 왜 하필 나냐고 징징댔었다. 그때 알았더라면 좀 덜 힘들어 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때의 내가 순간 위로 받았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처럼 한참을, 정말 한참을 한 문장에서 멈췄다가 결국 눈이 흐려져 책을 잠시 덮어야 했다. 사람이 일생에 단 한번은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 그랬다. 늘 행복을 찾아 헤매면서 정작 불행하다고 세뇌하고 사는 건 아닐까. 복지관에서 삶이 고달픈 이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면서도 나는 행복을 모른 척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청소 하나에도 인생 단수를 생각하는 그의 말이, 인생 단수를 올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버리는 연습을 자꾸 하라는 말이나, 하루 종일 칭얼대는 아이가 있으면 같이 있는 엄마나 아빠가 힘들고 진 빠지겠다 생각했지 칭얼대는 아이도 같이 힘들 거라는 작가의 예사롭지 않은 시선이 남다르다.
또, 감옥 안의 사형수와 감옥 밖의 사형수는 삶의 결과는 같아도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는 말을 그냥 넘기기 어렵다. 결국 삶의 집착이 문제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야 후회가 없다는 말도 다 옳지 않은가. 인생이 윤회한다는 것이 지지고 볶더라도 뭔가 부족한 채 살면서 채워가는 게 재미있는 것이지 통달하거나 해탈하는 건 재미없다는 철학이 깊은 울림을 준다. 게다가 사랑은 일회용 반창고 같은 거고, 어차피 변하는 거라서 단맛만 본 사람보다 쓴맛까지 다 본 사람이 제대로니 굳이 목에 핏대 올리고 이러쿵 저러쿵 해봐야 머리만 아플 거라는 충고는 사랑에 목메는 이들에게 아주 땡큐겠다.
"간혹 심장을 빼다가 어디 햇볕에 말려 놓은 놈들도 있다."라는 사이다 같은 말은 무개념 인간들 이마를 콕콕 짚으며 혼을 내는 작가를 보는 것 같다. 또, 용서는 남이 하자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서 그래도 되겠다고 해줘야 가능한 일이라는 말도 가슴 한편에 묵직하게 와닿는다.
"불평하고 원망한다고 인생살이가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석 달 열흘이라도 하겠는데, 그럴수록 더 힘들어지잖아. 내가 인생의 공식이라고 들고나온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야. 힘들고 만만치 않은 당신의 인생살이를 조금이나마 살 만하게 해주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만만하고 쉽다면 뭣 하러 공식 따위를 만들어서 들고나왔겠어?" 210쪽
이 책은 인생, 사랑, 가족 공식의 3가지 주제로 사랑, 결혼, 이별, 미움, 시기, 복수, 배신 등 누구나 삶에서 꼬일 법한 일들을 65년 작가의 인생 경험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래서 누구나 인생에서 좌절하고 무릎 꿇게 되는 순간에 쿨한 돌직구 처방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따뜻하기도 해서 너무너무 좋다. 내 인생 책장에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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