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있다'라는 게 농담이라는 말이 뭉근히 가슴을 눌렀다. 쉰이 넘어 절반을 지나는데도 여전히 잘 사는 게 뭔지 잘 몰라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디자인과 음악 관련 일을 하고 있고 인별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공감 글로 위로를 전하고 있다는 작가가 거리감이 느껴지다가 된장찌개와 숭늉을 좋아한다는 그의 입맛에 부쩍 가깝게 느껴지는 이상한 공감도 받는다.
라면처럼 익숙한 입맛으로 아무 감각 없이 후루룩 흡입하고 말기에는 너무 아까운 문장들이 넘쳐난다. 곱씹고 필사하면서 마음에 꾹꾹 담아야 하는 문장들이 방지턱 마냥 읽는 속도를 줄이고 있다.
읽다 보면 풍요롭지 않은 내 삶을 단박에 꿰뚫는 듯한 그의 통찰에 흠칫 놀란다. 나는 원치 않은 일을 매초 단위로 해야 하고 보기 싫은 사람 앞에서 웃어야 살 수 있는데… 내 삶의 빈곤이 마치 우주가 펼쳐진 것처럼 순간 가늠이 되질 않아서 먹먹하다.
"결혼의 성공은 좋은 상대를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상대가 되는 데 있다."
93쪽, 잘 살고 있어요, 사랑은 두렵지만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루아의 말에 덧붙여,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말인 것 같다는 그의 말에 덩달아 공감하면서 빈약한 내 인간관계가 오롯이 드러나버려 또 한 번 먹먹해진다. 한편 서로에게서 영원을 본다는 감각이 어떤 것일까 궁금해한다. 입에서 굴리기만 해도 이 신비롭고 황홀한 감각들이 살아 오르는데 여태 모르고 살았다니, 새삼스럽게 입에 올리고 굴리고 굴려 보며 혼자 웃는다.
삶은 종종 눈물을 머금게 만드는데, 그럴 때 고개를 떨구지 못해 들어야 하는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하늘은 햇살을 뿌려댔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다 문득 와씨 어떻게 이런 글을 써 낼 수 있지? 이렇게 감정을 흔들 수가 있지? 하면서 또 눈물을 머금게 만든다.
눈물을 머금으려
고개를 들어 본 하늘은
까불지 말라며
햇살을 뿌려댔다
155쪽, 눈물을 머금으려
백 번을 읽고 또 읊조리다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따끔거리는 문장을 만난다. "살기 위해 살지 말"라는 그의 말이 마치 그러고 있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꿈에서 멀어지는 몇 가지 이유를 듣다가 아마 분명 결국 내 꿈은 흰색 물감처럼 굳어 버렸거나 아니면 애초에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내성적인 작가가 쓴 글을 내성적인 데다가 갱년기까지 관통하고 있는 내가 읽으니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이 책으로 그의 감성이 짙게 베인 디자인과 음악들이 궁금해졌다. 추운 이 계절, 난로가 되어 줄 듯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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