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떠난 목마, 그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를 기다리는 박인환의 시에서 살아 숨 쉬던 그 버지니아 울프가 정신 질환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다. 그의 많은 작품 중에 <자기만의 방>을 읽었을 뿐이다. 그것도 고백하자면 내 깜냥으로는 어려워서 이해 수준이 아니라 훑은 수준이었다. 그런 그의 작품 세계에서 뽑아낸 212개의 문장이라니 기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북 큐레이터이자 고전문학 번역가이기도 한 역자는 고전 문학의 원문 속에서 문체의 미학과 풍부한 표현이 넘실대는 문장들을 수집해 자신만의 편역으로 독자와 함께 나누고 있다. 역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13작품들에서 영감을 받는 문장을 뽑는다. 프롤로그를 보면 작가로 페미니스트로서 그에 대한 무한 애정도 느낄 수 있다.
전에 읽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방>이라는 제목의 번역본과는 다르게 편역된 이 책의 <자기만의 방>은 좀 새롭다. 여성으로 제한된 삶에 갇혀 있어야 했던 현실을 조근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적어낸 글에 편역자의 생각이 덧입혀져 경제적 '능력'에 휘둘리는 보통의 여성들과 다른 그 자신에 대한 자조가 느껴진다.
이 책은 작품 속 문장들을 원문과 함께 번역을 해준다. 여기에 편역을 추가해 읽는데 어렵지 않게 의식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게 한다. 어렵고 난해한 문장은 편역자의 해설로 의미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기도 하다. 이 책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의 재미랄 것은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을 읽고 자신만의 번역을 통해 의미를 나눠보는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Though we see the same world, we see it through different eyes.
우리는 같은 세상을 보지만 다른 눈으로 봅니다.
41쪽,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목소리, Three Guineas_3기니
버지니아 울프의 첫 소설이었다는 3기니에 대한 편역자의 평가도 그렇지만 읽다 보면 그는 여성 권익과 극심한 차별을 부르짖는 데 있어 좀 전투적인 활동가가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적인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손꼽히는 문장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의 철학과 여성에 대한 사회정의, 페미니즘의 확실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야기 하는 그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게 만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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