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있을 게 다 있어서 웃다 찡하고 분개하고 그러다 통곡하다 머리가 아픈 영화 말이다. 코로나19로 조심조심한 영화판에서 간만에 이렇게 좋은 영화라니, 이게 기적이다 싶다.
대학도 포기한 채 경상북도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수재인 준경(박정민)과 홀아비로 원리원칙대로 살아가는,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한 아버지 태윤(이성민)의 뒷바라지를 하는 보경(이수경) 그리고 그런 누나의 껌딱지로 준경은 위험한 철로를 걸어 2시간을 걸려야 통학한다. 그리고 어느덧 6년의 시간이 흐르고 고교생이 된 중경은 여전히 간이역을 만들어 달라고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고, 그런 준경의 뮤즈를 자청하고 나선 라희(윤아)가 삶에 끼어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86년, 고1이던 준경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현실이었을까 아니면 별빛 반짝이는 우주의 가상 공간이었을까. 준경이 흠모하던 우주는 누구의 우주였을까. 또 그런 잡히지 않는 것들을 소망하는 준경의 뮤즈를 자청하고 나선 라희의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또 준경의 뒷바라지를 자청한 보경과 아들에게 눈길조차 줄 수 없었던 태윤의 우주는 무엇이었을까.
영화는 코미디로 시작해 불합리한 사회구조적 시스템의 경직성을 꼬집고 가족이지만 가족을 모르며 살기만 하는 가족의 아픔을 담는다. 있을 수 없는 일들, 간이역을 만든다거나 준경이 국회의원의 딸 라희와 이어진다거나, 준경이 국가대표로 나사(NASA) 장학생이 되는 것들을 통해 감독은 어쩌면 우리가 해보지 않은 것들을 미리 포기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한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너무 좋았던 것들은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관찰이었다.
담임도 몰라 본 준경의 천재성을 도서관에서 더 이상 읽을 책이 없는 준경에게 논문을 조달해 주는 물리 선생이 알아봐 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일, 간이역에 진심인 준경에게 시시콜콜 이유를 묻지 않아도 옆에 있어 주는 라희처럼 우리가 타인에게 마음을 놓지 않아야 하는 이유 아닐까. 그런 마음을 감독은 스치듯 보여준다.
또 당시에 유행했던 것들을 찾아보며 추억에 빠지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문방구 앞 미니 게임기에서 자를 튕기며 놀던 올림픽 게임이나 준경의 편지를 첨삭해 주며 쓰는 하이테크 수성 볼펜, 체육복, 말려버린 비디오테이프, 스카치테이프로 녹음 방지 구멍을 막아 녹음하던 어학용 테잎, 삼천리 쌀자전거, 펌프 우물, 포니 자동차 같은 것들.
기적이 하나하나 이루어지는 걸 보면서 터져버린 눈물과 콧물을 동반한 대성통곡하느라 영화가 끝난 후 머리가 너무 아팠다. 정말 최고다 이 영화, 스토리도 배우들의 기적 같은 연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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