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갇힌 가이(라이언 레이놀즈), 아침에 눈 뜨면 물고기에게 인사를 하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커피를 마시며 은행으로 출근해서 바닥에 엎드리고 얻어 맞고 밟히는 일상이 반복되는 모습은 어딘가 <트루먼 쇼>와 닮았다. 만들어진 세상, 프리 시티를 벗어 날 수 없는 인생. 가이나 투루먼이나 웃으며 일어날 정도로 자신의 세상을 좋아하는 것까지 닮았다. 그리고 탈출하는 것까지.
프리 시티에 사는 가이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막연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상형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어느 날, 절친 버디(릴 렐 하우어리)에게 막 털어놓는 순간 눈앞에 나타난 밀리(조디 코머)를 따라가다 기차에 치이고 다시 일상이 반복된다. 가이는 상상 속에만 있던 이상형이 현실에 나타나자 일상의 변화를 시도한다. 매일 마시던 아메리카노 대신 카푸치노를 주문하면서 자유 의지가 각성된다. 결국 프리 시티에서 선글라스 쓴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을 넘어 선글라스를 탈취해 써 버리면서 가이의 삶은 점점 플레이어를 넘어 히어로에 가까워지는데...
게임 유저를 해본 적이 없으니 영화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빠른 전개를 따라가는데 급급했다. 초반 도시를 지킨다는 히어로가 되려 도시를 파괴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게임은 NPC(Non Play Character, 배경 캐릭터)들을 때리고 죽이고 약탈하면서 레벨을 올리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정작 NPC들은 평화를 원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난 여기 앉아서 내 절친이 힘든 시간을 이겨내게 돕고 있어. 그게 진짜가 아니면 뭐가 진짜겠어?" 버디 대사 중
단순히 넘기기에는 다분히 철학적인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놀라움의 극치였다. 현실과 게임의 경계가 딱히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디테일한 설정과 비주얼도 그렇지만 가이가 자유 의지를 얻는 순간 하나의 존재하는 생명체로 인식하는 현실 속 인간들의 자유 의지 역시 소름 돋았다. 뭐랄까 게임이지만 AI의 자유 의지는 인간을 위협하고 세상의 종말을 가져온다는 인식이 대부분인 시대에 AI의 자유 의지가 인간 세상을 구하고 평화를 만든다는 설정이 기가 막혔달까. 어쨌든 인간이 만든 대부분의 게임은 폭력과 학살이 아니던가.
결국 가이와 밀리는 빌런 앤트완(타이카 와이티티)의 만행을 막아내고 프리 시티를 지켜내 NPC들은 더 이상 폭력과 약탈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들은 더 이상 같은 일상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스스로 자유 의지로 성장하고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유저는 행복해 한다. 한편, 게임이 현실과 연결되는 접점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기는 하지만 그런 게임 속 캐릭터들로 세상이 연결된다는 사실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 이젠 어떻게 세상을 구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면 될 듯하다.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이 대사 중
그리고 가이의 대사는 마지막으로 우리네 인생을 돌아 보게 한다. 집과 회사를 반복하는 일상에 갇힌 우리들에게 이제부터라도 NPC로 살지 말고 진정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지 해보라고, 당신 인생의 히어로는 당신이어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아니, 미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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