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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6

[소설] 여분의 사랑 아, 제목만으로 아득해지는 감정은 뭐란 말인가. 한 사람과의 사랑도 채우기 쉽지 않은 세상에 이미 차고 넘치는 사랑이라니. 작가의 여분을 아직 헤아리지 못한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은, 작가의 첫 소설이다. 다정함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다정함이 담긴 작품이 미발표작이란 이유도. 숨 가쁘게 두 여인을 좇는 이야기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읽어 내는 것 밖에. 온몸의 세포가 열 배쯤 넓어져 겨울 한복판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달의 뒷면도 아름답긴 하겠지만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고 없던 것이 되는 게 아니라는 센에게 전하는 하쿠의 메시지가 문장을 오래 씹게 해준다. 그렇게 그의 필력이 마법 같다. 숨이 막히게 서글픈 사랑인가. 31살의 다희가 26살의 우주를 떠올릴 수 없을 때 헤어질 결심은 .. 2023. 2. 20.
[소설] 허들 형광으로 빛나는 혈관 속을 유영하는 가오리가 눈에 선하다, 라는 말을 옮기려니 정신이 살짝 흐트러진다. 말 피와 플루오레세인을 수혈 받지 못함이 주는 결핍은 그를 예술에서 동질이 아닌 이질로 내몰았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색이 선명한 소설이 된다. 그리고 '어차피'라는 말이 이렇게 처연해도 될까, 싶었다. 어느 매장의 매니저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 매니저가 낮게 읊조렸던 소리는 책 속에서 크게 터져 나왔다. 다들 돈 있는 만큼만 살아 있는 거 아니냐, 라는 그의 술 취한 음색은 귀에 대고 소리치는 아우성만큼이나 속을 헤집는다. 누구나 '어차피' 사는 건 그런 거겠지만 더럽게 아프다. 뭔가 되게 끈적한 죽음 앞에 놓인 유서를 읽은 듯한 은 뭔가를 분명 뛰어 넘어야 할 명분이 있는 거 같은데 어디에 놓인.. 2023. 1. 3.
[소설] 소나기 그리고 소나기 - 스마트 소설 한국작가 선 얼마 전 텀블벅 펀딩으로 알게 된 명작 스마트 소설 해외 작가선을 읽었다. 몰랐던 카프카의 단편을 읽으며 좋았던 시간, 이번엔 국내 작가선이 담긴 책을 선물받았다. 제목만 봐도 애틋해지는 황순원의 소나기다. 그런데 연거푸 두 번씩이나 내린다. 소나기가. 소나기는 황순원의 것만이 아니었을까. 야트막한 개울 냇가에 긴 징검다리에서, 수숫단 속에서 손을 어깨를 스치며 한껏 설레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변주되어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 쏟아지니 읽는 재미에 당최 숨이 가빠져 쉬엄쉬엄 읽어야 할 판이다. 구효서의 이야기 속, 후포의 양산 소녀 아니 여인의 직선에 가까운 성격은 맑은 날 조심스레 내리는 여우비와는 어울리진 않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 발그레 지게 훅 들어는 게 너무 설렘 하지 않은가. "소년들은 성인의.. 2022. 1. 14.
[소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 불리는 '파리 리뷰'가 있고 국적 불문, 장르 불문, 작가 이력 불문 그래서 탐미적인 문학 실험실인 그 파리 리뷰에 실린 글 15편을 엮었다. 책 소개에 국내에 알려진 작가들 이외 소개되지 않은 작가들이 대부분이라 했지만 난 알려진 작가들조차 생경해서 더 흥미로웠던 책이다. 소름 돋을 정도로 멋진 제목처럼 얼마나 감각적인 책일까. 첫 작품이 자 이 책의 제목이 담긴 를 읽고 든 생각은 그래서 '실험적' 작품이구나 싶었다. '멍청한 놈'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생사의 갈림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대한 것들이 약쟁이의 환각으로 대치되는 순간, 난 뭐지? 이건? 이란 느낌이었다. 기존 익숙한 소설의 문장 형태를 찾을 수 없는 맥락들.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리뷰(해제)가 있음에도 감각을.. 2021. 12. 18.
[소설/낭독리뷰] 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 "곰치가 살아 온 세상은 늘 이랬다. 아픔의 이유를 생각하는 것도 부질없었다. 그러는 동안 심장은 밤 껍질처럼 단단해졌다. 발목에 숨겨 놓은 잭나이프로도 그것은 베어지지 않았다." 20쪽 이상하리만치 곰치의 세상이 작가의 세상이 아닐까 싶은 기분이 떠나질 않았다. 지리멸렬한 삶은 아닐지 몰라도 뭔가 생기는 죽은, 어쩔 수 없는 삶 같은 곧 부서질 듯 바스락거리는 건조함이랄까. 어쩜 내 삶이 그럴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내겐 쉽지 않은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한데 아이러니 한건 음습하진 않지만 어두운 공기를 잔뜩 묻힌 짤막한 이야기들 속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단편이라 호흡도 짧게 단숨에 읽게 되는 소설이다. 그리고 소설 전체에 밑간처럼 베여있는 '문학'이라는 양념이 작가의 또 다른 삶의 공기였.. 2021. 3. 30.
[문학/청소년] 단 한 번의 기회 - 반올림 36 는 이명랑 작가의 5개의 단편을 묶어 펴낸 단편집이다. 때마침 시험 때라고 나름 열심히 공부에 열을 올리는 딸아이에게 권해주고 싶은 마음에 읽기는 했지만 너무 암울하고 비극적인 내용에 복잡한 마음이 들어 딸에게 권하지 못 했다.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고는 있지만 너무 극단적이고 비관적인 내용이 오히려 공감을 방해한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의지와는 다르게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는 있는 현실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극단적 심리 불안과 두려움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때론 비극적인 현실이라도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내용이 위로가 될 수 있다. 무한 경쟁에 내몰리면서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아이들을 그린 "단 한 번의 기회", 뇌가 심장을 갉아먹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목적도 없이 내달리.. 2016.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