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가는데로서평

[소설/낭독리뷰] 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

by 두목의진심 2021. 3. 30.
728x90

 

 

"곰치가 살아 온 세상은 늘 이랬다. 아픔의 이유를 생각하는 것도 부질없었다. 그러는 동안 심장은 밤 껍질처럼 단단해졌다. 발목에 숨겨 놓은 잭나이프로도 그것은 베어지지 않았다." 20쪽

 

이상하리만치 곰치의 세상이 작가의 세상이 아닐까 싶은 기분이 떠나질 않았다. 지리멸렬한 삶은 아닐지 몰라도 뭔가 생기는 죽은, 어쩔 수 없는 삶 같은 곧 부서질 듯 바스락거리는 건조함이랄까. 어쩜 내 삶이 그럴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내겐 쉽지 않은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한데 아이러니 한건 음습하진 않지만 어두운 공기를 잔뜩 묻힌 짤막한 이야기들 속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단편이라 호흡도 짧게 단숨에 읽게 되는 소설이다. 그리고 소설 전체에 밑간처럼 베여있는 '문학'이라는 양념이 작가의 또 다른 삶의 공기였다는 걸 책장을 덮은 후에 알았다.

 

"진실이란, 사실이 아니잖아요. 각자 믿고 싶은 것을 말하는 거지." 58쪽
“우린 기억하기도 힘든 세세한 원인을 종일 서로에게서 찾았고 가장 아파할 만한 말만을 골라 상대에게 던졌다.” 98쪽

 

등장인물들의 팍팍한 삶에서 독자는 자신의 삶을 투영한다. 그래서 더 가슴에 박혀 조금씩 밀려 들어가는데도 아프기는커녕 위로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회전초>의 기다리는 넋을 놓고 기다리는 아내가 작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상상도 해본다. <달 뒤편에서의 조식>은 꽤나 몰입도 높게 읽었다. 아파트 철문 뒤에 갇혀 강 건너 김 씨에게 자장면을 배달 시켜주던 그녀가 생각나기도 하면서 뭔가 일어나길 바라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 초상이 왜 축제로 인식되는지 모르겠지만 삶의 마지막에 축제로 기억된 장면이 엉뚱한 파편이었다 해도 관계없을까? 그렇게 축제처럼 황홀한 풍경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확인해 버린 김장억의 축제는 도대체 누구와 기억되어야 할지 안타깝다.

 

 

어쩌면 작가에게 오롯이 작가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일에서 더 많은 이야기가 뭉쳐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회전초>가 자전적 소설이라면 말이다. 얼개의 촘촘함, 메타포의 상징이나 감정이 글자에 녹아들지 않게 하거나 활자의 뜨거움이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도 못할 고작해야 책 읽고 서평을 꿀쩍거리는 내 수준에서 본다면 글을 쓴다는 일이 어떤 감각을 만드는 일인지 솔직히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이 소설이 갖추어야 할 문학적 상징이 얼마나 담겨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내 입장에서 좋은 소설이란 몰입해 재미있게 읽으면 그만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렇다.

 

하지만 직장인으로, 소설가로 이중적 삶을 살아내는 일이 마치 소설에 등장한 담벼락 안과 밖의 삶처럼 어쩌면 상상할 수 없어서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럽다. 여하튼 이 소설이 곰치에게는 어떤 것을 주었을지 모르겠지만 내겐 이중의 삶을 꿈꿔 볼 작은 용기를 줬다.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