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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소설] 여분의 사랑

by 두목의진심 2023.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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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목만으로 아득해지는 감정은 뭐란 말인가. 한 사람과의 사랑도 채우기 쉽지 않은 세상에 이미 차고 넘치는 사랑이라니. 작가의 여분을 아직 헤아리지 못한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은, 작가의 첫 소설이다.

 

다정함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다정함이 담긴 작품이 미발표작이란 이유도. 숨 가쁘게 두 여인을 좇는 이야기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읽어 내는 것 밖에. 온몸의 세포가 열 배쯤 넓어져 겨울 한복판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달의 뒷면도 아름답긴 하겠지만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고 없던 것이 되는 게 아니라는 센에게 전하는 하쿠의 메시지가 문장을 오래 씹게 해준다. 그렇게 그의 필력이 마법 같다.

 

숨이 막히게 서글픈 사랑인가. 31살의 다희가 26살의 우주를 떠올릴 수 없을 때 헤어질 결심은 존재를 지워야 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일이다. 어쩌면 감춰진 비밀을 더 감춰야 하는 일보다 더 비극적일지도 모르겠다. 상상했던 여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길 잃은 사람처럼 문장 위에서 꼼짝할 수 없다.

 

뭘 해도 실패와 빚부터 배우고 떠안게 되는 이 시대 청춘의 자화상 같아서 시훈이 뒤집어 쓴 가루의 정체가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땀 흘려 번 돈은 정직할까? 노동은 지훈의 말처럼 신성할까? 답 없는 세상은 자꾸 질문만 만든다.

 

122쪽, 변신을 기다려

 

결핍 그리고 변신. 한데 거기에는 레어템이 필요한 불가능에 가까운 사다리가 필요하다. 생계를 위해 변신은 꿈도 못 꾸는 결핍을 세습 받은 지후를 또 그렇게 살아온 '나'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더 좋은 포켓몬을 찾아 더 멀리 헤매는 모습은 꿀을 빨기 위해 1초에 100여 번의 날갯짓을 하는 벌새처럼. 어떤 욕망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변신을 기다려야 할까. 변신은 가능한가?

 

232쪽, 루프

 

뭐랄까, 아니 뭐랄 것을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 내내 부스러져 날리는 기분이었다. 애증이 뒤섞인 관계들 속에서 어떻게든 버텨내려는 또 다른 관계의 뒤엉킴에 먹먹함이 있다. 둘이었다가 하나가 되고 결국 다시 둘이 되는 관계 사이를 유영하는 일에 내내 마음 부침이 있었다. 궁금했다. 루프는 그에게 빛이 될 수 있었을까?

 

그의 소설에는 유독 결핍이 많다. 물질이든 마음이든. 관계에서 혹은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그런 사람들의 허기진 것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덥히려 했을까. 서로에게 상채길 남기던 문장 속 결핍들은 이십여 년 전으로 나를 몰아가곤 했다. 갑자기 장애인이 되고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더 많아진 삶에서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몰아 세우던 날들로, '시켜만 주시면 뭐든 잘 하겠다'라고 읍소하던 그때에 서있게 했다. 그래서 더 휘청거렸다.

 

책장을 덮은 지금, 제목이 루피가 아닌 여분의 사랑이었을까, 조금은 생경해 졌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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