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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낭독리뷰] 우리는 예쁨 받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by 두목의진심 2021.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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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에서 페미니즘과 현실에서 페미니스트, 그 어디에서도 이렇다 할 명함을 내놓기가 어려운 입장에서 그리고 작가의 <불량소녀 백서>도 읽지 않은 입장에서 이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이유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딸이 있어서다. 녀석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할까 싶어서다. 작가도 말했다시피 딸도 소녀에서 여성으로 변모하는 중이므로.

 

된장녀로 시작하는 시원하고도 적확한 지적은 그동안 된장녀의 된장을 손가락 끝조차 묻혀보지 못한 지질한 부류들에게 던지는 조소 같음이리라. 사실은 그 '찐'된장녀들에게는 찍소리도 못했을뿐더러 실은 사귀어 볼 수준도 안 돼서 어깃장 놓는 수준이라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 아니 웃펐던가? 나 역시 그런 지질한 족속 중에 하나였을 테니. 내가 한창 학창 시절이었던 때는 공공연히 남자들 로망이 셔터맨이었으니.

 

너무 공감되고 유머러스하고 시원시원한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게 된다. 한데 데이트 폭력을 염두 했을 테지만 "남성이나 여성이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달라는 것은 폭력이다."라고 단언하는 그의 말을 여러 번 곱씹는다. 허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건 자신뿐이어야 하는지 요즘 자존감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인데 말이다. 생각해 봄직하다.

 

큰일 났다. 작가가 '도망'치라며 내린 가족의 정의를 내가 그대로 하고 있는데... 미래에 내 등골 빼 먹을 생각하지 말라며 공부를 강요하고 내가 먹이고 입히며 뒷바라지 한 만큼 내 노후는 보장하라고 말이다. 근데 작가의 글을 읽자니 내가 이리 힘든 이유를 보자면 우리 아이들이 나랑 더럽게 안 맞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분명 그렇게 생각할 공산이 크다.

 

록산 게이와 작가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저릿했다. 푹푹 쪄대는 찜통더위에 공부는 하지도 않으면서도 ​단과 학원 교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꽉꽉 들어찬 학생들 사이로 두 자리를 차지한 여학생 뒤통수에 대고 "가뜩이나 숨쉬기 어려운데 아주 공기를 다 빨아먹는구나"라며 들으라는 듯 옆자리 친구와 시시덕거렸다. 그 여학생은 그 다음날부터 조용히 사라졌다. 그때 일이 떠올라 숨이 거칠어졌다. 1989년, 고3이었다.

 

또 잠시 육상 선수를 하던 때, '뚱땡이'라는 별명을 가진 투창을 하는 여사친에게 통뼈라든지 발목이 두꺼워 순발력이 떨어진다든지 살이 아니라 근육 덩어리라든지 하며 아무렇지 않게 그의 몸을 평가했었다. 핑계일 테지만 그땐 서로 웃고 떠들던 사이였고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여전히 만나는 사이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그때 그 친구가 얼마나 가슴이 아렸을지 생각지도 묻지도 못했다. 책을 보고 나서야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이 대못질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한번 숨이 거칠어진다.

 

나를 비롯 쿨내 진동할 정도로 옳은 소리 내뱉던 빨간머리 앤을 무던히도 사랑하는 이가 많음에도 작가는 앤을 씹는다. 그것도 잊을만하면 되새김하듯 여러 차례. 하긴 목이 뻣뻣해질 정도로 얻어맞은 싸대기 정도라면 척을 질만하지! 싶은 데다가 작가 나름의 극적인 반전의 해석을 덧붙여 미움을 쏟아내는 이야기에 미소가 절로 난다. 자고로 동화는 해석하는 맛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

 

뿐만 아니라 놓쳐서는 안 될 개구리 감별 법은 피해야 하는 여성뿐만 아니라 이제라도 개과천선해 어설픈 왕자라도 되겠다는 다짐하려는 남성도 꼭 읽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사회 인식 그것도 대중문화의 뒤에 가려진 폭력, 여성의 몸을 상품화 해대는 자본주의의 생리를 고발하는 걸 잊지 않는다.

 

 

외로움보다는 괴로움이 견디기 쉬운 작가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글들에서 여성으로 살아 내야만 하던 감내한 인생이 담겼다. 근데 내가 또 남들에겐 진상인지 어쩐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진상에게 호구 잡힌 당신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진상이 문제라는 걸 알아 두시길. 절대 그걸로 주눅 들어 '나는 호구다'를 주문처럼 외우며 살지 말길 바라는 오빠 같은 마음이 든다. 그건 그렇고 그런 놈이 만든 그런 정의를 흉내 낸 영화는 궁금하다. 아니 솔직히 그놈이 궁금하다.

 

그리고 한참을 머뭇거리던 질문. 나는 도넛이냐 고로케냐, 휑하니 뚫려 결핍에 허덕이는지 이미 부풀어 올랐음을 알지만 부러 결핍을 만들어 더 채우려 기를 쓰는지 헛갈린다. 또 배부르면 숟가락을 놓는지 더 밀어 넣어야 살 수 있는지도.

 

 

놀라면 안 되는데, 한 여성으로 그보다 먼저 인간으로 이렇게 자신을 탈탈 털어놓는 이야기를 가십 정도로 휘발될 이야기가 아님에도 그냥 한번 놀라는 정도로 잊힐까 미안한 글이다. 그의 당당함에 팔을 걸어도 좋겠다. 남녀노소 다 읽어야 할 이야기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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