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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낭독리뷰] 관계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by 두목의진심 2021.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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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이라는 심야의 공간에서 글을 올린다는 이평, 이란 작가의 필명이 두 평이 아닌 게 호기심이 일었다. 공간을 세는 데는 이평보단 두 평이 익숙하지 않은가. 어쨌거나 정리를 좀 배워 보고 싶은데 엉뚱하게 필명 하나에 꽂혀 관계를 또 하나 늘리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만큼 난 관계가 힘겹다.

 

첫 에피소드부터 쿨내 진동하게 직설적인 게 참 마음에 든다. 거기다 '숟가락 살인마'라니, 비밀스러운 것을 공유하는 것 마냥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기분에 괜히 으쓱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보기 좋게 관계를 망가뜨리기도 하면서 살아봐야지. 진짜 내 인생을 위해서." 21쪽

 

울컥한 문장 하나는, 뒤돌아 후회할 줄 뻔이 알면서 앞에서 웃는 일은 가진 에너지의 대부분을 써야 하는 일만큼 힘겹다는 것, 또 굳이 얼굴 붉힐 일을 만들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일들은 아주 고급 진 직장인의 스킬임에도 이런 것들을 후련하게 한방에 날려버리는 "에라- 모르겠다"라며 뻗대 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기분 좋다. 한데 그 좋은 말을 은퇴전에 한 번은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니 겁나 서글프다.

 

그동안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게 관심이 없다는 말, 그러니 너무 타인의 눈치를 살피지 말라는 말은 참 많이 들었다. 한데 이런저런 관계에 지치면서도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습관은 여전한 탓에 위로를 포장한 팩트 공격에 나가떨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그러니 너도 관심 끊으"라는 말에 힘이 불끈 솟구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장난도 지나치면 모두에게 실례될 수 있다. 이외에도 조심은 다다익선이다. 5년을 알든 10년을 알든 한 번 어긋나면 '함께한 정'은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말이다." 43쪽​

 

<인생을 자주적으로 사는 법>을 읽다가 한 친구가 생각났다. 코흘리개 때부터 같이 자랐던 친구인데 고등학교 때같이 어울리던 친구 무리에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왔다. 한데 친구들은 있지도 않은 연애담을 지어내며 짓궂게 장난쳤다. 얼굴이 홍당무가 된 녀석은 여자 친구와 황급히 자리를 떴고, 며칠 뒤 "여자 친구가 너희들이랑 놀지 말래"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난 뒤 그 여자 친구와 결혼을 했다. 결혼을 알리지도 않았지만 우연히 알게 돼 몇몇 친구와 찾았다. 축하하러 간 자리에서도 그때의 냉기는 여전했고 그렇게 다시 십수 년을 각자의 삶을 살았다.

 

녀석은 "보고 싶다"라며 마흔이 넘어서야 친구들을 찾았다. 한때는 참 괘씸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 작가가 말한 "그의 선택"이었다는 말이 수긍이 됐다. 거기에 더해 나의 선택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그저 결과일 뿐이니 괘념치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 말은 가슴에 와닿음에도 확실하게 '개인적'이지 않은 내가 이 더위만큼이나 갑갑하다.

 

구구절절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불알친구가 막역지우인 것은 맞지만, 막대하라는 건 아닐 텐데 "우리 사이에 이 정도"를 스스로 선을 정해 놓은 친구들도 있다. 친구의 감정은 헤아리지 않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그러다 지쳐 거리를 두면 "뭘 그런 걸로 삐지냐"라고 되려 옹졸하게 굴지 말라는 식이다. 오래된 친구라는데는 그저 시간만 쌓인 게 아니라 서로의 마음도 쌓여 온 시간이라서 "내가 너를 모르냐?"라고 할 것이 아니라 "네 마음이 그랬구나"처럼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야 그 시간이 온전히 함께 해 온 것이 된다. 나도 여전히 나를 알아 가고 있는 중이다. 네가 알 턱이 없다.

 

 

​또 한편으론 '지극히 개인주의적'으로 살면서 불필요한 감정과 만남을 줄이고 자신에게 맞는, 나 좋다는 사람들을 챙기며 사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작가의 글에서 그동안 틀어진 관계 속에서 후회와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관계가 일방이 아닌 쌍방이니 틀어졌대도 그 안에 꺼낼 추억이 왜 없을까 싶다.

 

메슬로 욕구 5단계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보다 생각한다. 단계를 보면 그중 제일 넓으면서도 밑바닥에 버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생리적 욕구다. 먹고 입고 자고 싸는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 단계의 욕구를 추구한다는 이론인데 이게 충족되지 않을 때 위로 자리한 다른 욕구를 넘보다간 탐욕이고 욕망이라는 세상 차가운 눈총을 받는다. 밥 먹을 돈도 없는 사람이 예술을 갈망하면 '배가 부르구먼'이라는 식이다. 그런 걸 보면 자본주의에서 인간은 시작부터 그렇게 자존감도 모두 갖고 시작하진 못한다. 인권? 날 때부터 갖고 있다는 그걸 제일 밑바닥 욕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본적이나, 아니 느껴 보기나 했을까? 참 살기 어려운 세상임엔 틀림없다.

 

그렇게 누가 누굴 위로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이렇게 조차 위로하고 받을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팍팍한 삶을 살아서 뭣하냐 싶기도 한데, 또 저자의 글처럼 인터넷 댓글이든 우연히 마주친 타인의 모습에서든 서로 동지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조금은 살만해질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쌓는 게 아니라 그저 누리는 것" 145쪽

 

울컥했다. 그는 살아가는 동안 꾸준히 그러면서도 치열하게 삶을 고민해야 한다고 한다. "무얼 하며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심지어 내가 누구인지까지" 말이다. 그런 일들이 결국 "피상적인 생각들이 노하우라는 제련 과정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 주고, 지쳐 포기할 때쯤 성장 동력이 되어 준다."라고 말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는 것,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사는 것. 그의 말처럼 어느 하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담담하지만 울림이 오래가는 걸까.

 

"행복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타인의 상처를 이해 못 한 채 보듬기만 하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사람은 가히 마음이 온전치 못한 존재구나 싶다." 176쪽

 

행복을 죽을 때까지 의식하고 쫓기만 하는 내 인생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는 행복해지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행복해져라!" 하며 주문도 열심히 외우지만 행복은 언제나 한걸음 건너편에 있는 듯한 느낌으로 살아왔는데 어쩌면 그게 의식하고 살기만 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릴 때, 그러니까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한 우물만 파면 뭐라도 된다"라고들 했는데 정작 사회에 나와 삽질을 시작해 보니 한 우물만 파면 그건 결국 내 무덤 판 거더라. 한 우물을 파는 동안 사회는 폭풍이 휘몰아치듯 정신없이 변했다. 그때 깊진 않아도 힘닿는 대로 여기저기 우물을 팠던 사람들은 뭐가 돼도 돼있더라. 그게 현실이었다. 근데 작가는 끝까지, 끝이란 게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끝장을 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또 그새 세상이 뒤바뀌긴 했다. 그래서 실패의 경험과 포기 사이를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원래 타인은 타인을 잘 몰라 대부분 무례한 법이거든요" 184쪽

 

 

이 책은 단순히 관계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려 애쓰는 책은 아니다. 관계의 지침이 있다면 과감히 떨치고 홀연히 일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지치고 힘겨운 인생에 조금 더 강단 있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장착하고 실패의 경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포기는 배추나 셀 때 쓰라며 멈추지 말라는 응원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나'부터 좀 챙기자며 개인주의자가 되는 방법도 일러준다. 행복은 모두 상대적이니 관계와 일, 사는 게 지침인 우리를 위한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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