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낭독리뷰] 이수의 일기

by 두목의진심 2021. 6. 3.
728x90

 


긴 생머리, 환경, 제주도 그리고 화가. 뭐랄까 TV 화면에서 천방지축 뛰어다니며 어른에게 반말을 찍찍하면서 반색하는 어른들의 반응을 즐기는 듯한 아이를 보면서 "화가는 무슨"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몇 년 후, 깡총해진 머리와 여전히 번잡스럽긴 매한가지이면서도 뭔가 모르게 조금은 의젓해진 모습으로 다시 티브에 등장한 소년을 봤다.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선 하나에도 사람을 향한 마음이 담긴 선도 색도 생각도 선명해진 소년의 말에 말문이 막혔던, 아니 창피했다는 게 솔직하겠다. 어쨌거나 그렇게 그림 좀 그리는 천방지축 소년은 생각 깊은 작가로 기억됐다.

 

 

이 책은 제목처럼 일기다. 소년의 4년간의 역사에서 일부를 옮겼다. 그리고 일기를 왜 써야 하는지 선언처럼 여는 글로 시작한다. 훗날 자신의 잘못을 거울처럼 비춰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글로 남긴다는 이유에 입이 떡 벌어진다. 어른스럽다는 게 나이와 관계없겠지만 확실히 소년은 그렇다. 게다가 아무리 초등학교 고학년의 나이라고는 하지만 구사하는 어휘력의 수준은 나보다 훨씬 낫다.



"안 되는 일은 잠시 내버려 두고, 되는 일은 된다고 행복해하면 된다"라는 말에 허탈해졌다. 이 나이 어린 친구의 깨달음을 쉰둘이나 먹고서도 깨닫지 못한 채 무슨 일에든 불평불만을 툴툴거리는 내 모습이 어쩜 이리 창피한지 읽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자신이 애지중지 아끼던 노트를 동생이 망가트리고, 기대에 차 1년 동안 모은 용돈을 다 날린 일로 속상하고 아픈 마음에도 되려 이렇게 "슬픈 마음을 먹으면 즐거운 마음이 그만큼 멀어졌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동생의 머리통에 꿀밤이라도 주는 게 아니라 마음을 다독이고 내려놓는 일이 이 나이 어린 소년이 어떻게 가능한지 생각하면 할수록 헛헛한 웃음만 난다.

 

"진정으로 내 삶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겪는 아픔도 행복일 수 있고, 견디는 극복도 행복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당장에 쾌락보다 전체적인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고,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존재들을 바라보는 시간을 더 가지자고 다짐한다." 64쪽

 

이 소년을 그저 동화 작가나 화가로 부르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자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삶, 관계, 사랑, 휴머니즘 등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 조그만 소년이 걷잡을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길 바라는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져 나는 마음이 무겁다.



 

"배운다는 것은 순서도 없고 정해진 규칙도 없다. 나를 변화시키는 순간, 그때가 내가 무언가를 배운 순간이다." 169쪽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고 하던데 이 책을 읽으며, 아이가 이렇게 깊은 생각할 수 있는 힘은 다름 아닌 지혜로운 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깜냥이 안 되는 내 그릇을 탓하는 건 아니다 싶어 이제라도 이수가 말한 순서도 규칙도 없는 배움을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빵빵해진다.

 

 

읽는 내내 기분은 신기하기도 하고 마음은 무겁기도 했다. 이제 14살이 된 소년의 눈에는 세상은 어떨까? 아니 사람은 어떨까? 가족 안에서 끊임없이 삶에 대해 사유하는 아이의 철학이 가볍지 않아서, 글과 그림을 허투루 넘기지 못하게 한다. 글씨체도 비슷하고 ​짧은 글로 깨달음을 주던 광수생각이 생각났다. 잠들어 버린 사유를 깨우는 철학 책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