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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 리멤버 홍콩 - 시간에 갇힌 도시와 사람들

by 두목의진심 2021.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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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보니 도시가 불타고 있었다.'라는 문구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작년 코로나19의 위세에도 눌리지 않고 도시를 뒤덮었던 노란 우산의 홍콩 거리를 뉴스에서 보며 촛불을 들었던 광화문 거리가 겹쳐졌다.

 

더 이상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이전과 같은 홍콩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저자의 말은 예언이 아니라 현실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4월 1일이 되면 추억하는 장국영처럼 우린 예전의 홍콩을 짜내듯 기억해 내야 할지도 모른다.

 

단순히 홍콩의 유명 관광지를 소개하는 책이겠거니 했는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로 홍콩을 선사한다. 홍콩이 왜 홍콩인지, 고립을 경험한 그들이 중국의 간섭으로 어떤 불편한 감정을 갖는지, 강압적 폭력에 맞서 그들이 왜 노란 우산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이 책은 단순히 관광객의 입장에서 홍콩의 거리를 기억하자는 게 아니다. 그들이 이방인의 역사에서 그들만의 문화가 되고 그로 인해 홍콩을 찾는 모든 이들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힘을 어떻게 키워왔는지에 대해 잊지 말길 바라는 찐팬의 입장에서 기록되는 역사다. 흥미롭고 한편으로는 우리가 겪었던 역사의 한 페이지도 함께 읽혀서 가슴 뜨거워진다.

 

"혁명은, 또한 모든 피와 폭력은 전염된다. 문화혁명의 파도가 이윽고 홍콩을 덮쳤다." 50쪽

 

몰입에 작가의 필력도 한몫한다. 취재를 통한 그들의 역사를 화려한 관광지 천국이 아닌 어쩔 수 없이 밀려나 생존을 위해 터전을 만들어야 했던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역사와 문화를 세심하게 담고 집중하고 읽게 만든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다거나 천안문 광장 앞 탱크를 막아선 남자의 모습을 뉴스에서 보면서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당시 중국은 진품만 빼고 다 만들어 내는 짝퉁 천국 정도로만 여기던 시절이었다. 한데 2018년의 우산 시위는 달랐다. 그들의 모습도 사정도 1980년의 광주가 떠올라 마음이 쓰였다. 마음으로나마 힘껏 응원했다.

 

 

"불만스럽고 불안하지만 '설마 죽기야 하겠어'라고 생각했지." 102쪽

 

정말 그랬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민주주의라고는 하지만 영국의 식민지 형태의 홍콩인에게는 자유가 온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독재질을 하는 공산 정권의 중국 역시 고국이라고는 하지만 자유가 보장되지 않을게 뻔한 상황에서 결국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들에게는 이랬거나 저랬거나 관광객으로 오는 사람들이 중요했을지 모른다. 생존 앞에 정치는 개나 줘버려야 하는 거였다.

 

또 일명 학민(학생 시민)을 거리로 불러낸 중국의 교육 공작은 과거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매월 15일, 사이렌이 울리면 거리에 있는 모든 것들은 멈춰 서야 했다. 사람이건 차건 심지어 횡단보도 한복판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던 기억도 있다. 학교에서는 교련복을 입고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으며,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미술 시간엔 반공 포스터를 그려야 했다. 그때가 생생하게 살아났다.

 

 

한 글자도 놓치기 아까운 홍콩의 근대사가 아닐까 싶다. 반면 그런 홍콩과는 다르게 21세기 현재에도 애국심으로 포장된 세뇌로 길러진 키즈들을 앞세워 납치와 협박, 감금으로 홍콩을 짓누르는 중국의 양아치 짓은 어느 누구라도 오래오래 잊지 못할지 모른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본토'를 중국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하나의 중국을 외치는 건 중국만 외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바다 건너에 있지만 어쨌든 피로 묶인 그들이니. 한데 홍콩인에게 본토는 차로 한 시간이면 끝과 끝을 다니기 충분한, 그들이 버티고 살고 있는 생존의 터전인 '그곳'이라는 그들의 정체성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책장을 덮은 지금 가슴이 뻐근하다. 아주 많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가, 2 대 8의 가르마를 타고 하얀 속옷 차림으로 행복한 얼굴로 맘보를 추던 장국영의 나라가 어쩌면 수년 내에 정말 사라질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홍콩은 이제 본토인은 다 떠나고 내지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나라를 빼앗기는 일, 그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우리는 알지 않은가.

 

홍콩이 우리가 알던 홍콩으로 살아남길 격하게 응원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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