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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소설/낭독리뷰] 69 sixty nine

by 두목의진심 2021.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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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라니 그럼 나는 도대체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사는 것인가! 갑자기 위궤양도 없는 속이 다 쓰리다. 누군가 삶이 재밌어지는 약이라도 팔아야 되는 게 아닐까? 아니면 학원이라도. 쓸데도 없는 자격증 같은 거 가르치느라 정신 줄 놓게 하고 정신 차리고 제대로 노는 건 가르치지도 않으니 나 같은 사람은 원체 죄만 짓게 되는 게 아닐까. 흐흐.

 

푸학! 고다르를 타고르와 헛갈린 의대 지망생이라니 게다가 그걸 또 지적질 하는 등수도 보이지 않는 질풍노도의 괴짜 학생이라니. 이거 이거 심상치 않은 이야기 책임에 틀림없다. 벌써 작가가 사랑스럽다.

 

 

"동물이건 사람이건, 어른이 되기 일보 직전에 선별이 행해지고, 등급이 나눠진다. 고등학생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는 가축이 되는 첫걸음인 것이다." 160쪽

 

읽다 보면 숱한 청춘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던 베트남 전쟁이나 사상이나 이념으로 혼란스러운 정치나 시대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뿍 담긴 그런 책이라면 정신 나간 거고, 그렇다고 피식하고 웃고 마는 가벼운 재기 발랄이나 언어유희만 있는 건 분명 아니다. 그 시절 야자키는 거칠고 거침없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시절의 모든 행동과 사상과 이념의 수준이 어른을 앞둔 고등학생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보다 더 단순해서 덩달아 무상무념으로 빠져들어 버린다. 야자키를 상상하니 이나중 탁구부의 마에노가 막 거사를 벌리기 직전, 약간의 음탕함이 묻어나는 웃음기를 잔뜩 담은 장난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충분히 자극적인 제목과 흥미로운 표지에 혹 해서 집어 든 책 치고는 꽤나 실망스럽게 자극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딘가 모르게 아슬아슬한 이야기는 1969년 야자키의 고교시절에서 1986년의 내 고교시절로 타임 루프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노이로제에 걸린 닭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우리도 힘이 쭉 빠져 있었다. 밝게 빛나지 않는 것은 닭이건, 돼지건, 개건, 함께 있는 존재를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226쪽

 

안타깝게 옥상에 바리케이드를 치거나 교장실에 똥은 싸지는 못했지만 숱하게 담을 넘어 동대문 흥인 시장을 넘나들고 석촌 호수와 화양리를 배회하면서 나름의 미래를 고민했다는 건, 거짓말이고 어떻게 하면 재밌게 놀 거리가 없을까를 고민했고 여자를 꼬시다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여자의 뒷모습에 친구들에게 놀림당하고 몇 번 차이면서 인생을 소주잔에 사이다를 처마시면서 부활의 마지막 콘서트와 스틸하트의 쉬즈 곤을 불러 재꼈다.

 

그리고 지식 전달의 의무는 저버린 채 주먹질과 귀싸대기를 날리다, 돈을 쥐여주는 부모를 둔 제자에게는 웃음을 날리던 선생들에게 반항을 하다 매일 처맞던 그때, 비라도 내리면 땡땡이를 치고 비를 처맞고 가면서 들국화의 사노라면을 고래고래 소리쳤던 그때 나도 열일곱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 인생에 몇 번째로 재밌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땐 공부 빼고 그냥 다 재밌던 게 아니었을까.

 

자타가 인정하는 재밌게 살았다는 그의 인생에서 손꼽히게 재밌다던 나머지 두 가지는 뭐였을지 그리고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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