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가는데로서평

[소설/낭독리뷰] 우리가 원했던 것들

by 두목의진심 2021. 4. 25.
728x90

 

 

처음에는 학교에서 일어난 사소한 사건을 다룬 이야기라 생각했다. 한데 읽는 동안 미국 내슈빌이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에서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당장 오늘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겼다.

 

 

강을 사이에 두고 빈부의 격차가 여실히 드러나는 내슈빌에서 귀족학교라 일컬어지는 윈저로 편입된 저소득층의 라일라와 최상류 층인 핀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진실 공방은 소설이 아니라 너무 현실적이라는데 놀랍고 소름 돋는다. 경제적 능력을 오랜 세월 계층으로 세습하는 이들의 결핍된 인간성을 적나라하게 꼬집음과 동시에 그런 이들에게 기생하는 세력을 기반으로 정의를 만들어가는 사회 문제를 고발한다.

 

한편 진실을 밝히는 정의 구현에 커크를 비롯한 가진 자들의 저급한 방법을 비난하며 자신은 양아치가 아니라 최소한의 양심이나 정의롭다고 믿는 니나와 톰을 통해 과연 정의의 심판은 누가 누구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옳은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나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고 자부하는 니나는 아들 핀치의 반사회적 행동을 용납하기 어려워 한다. 특히 반사회적이고 반인권적인 행동에도 무신경한 모습을 보이는 아들 핀치에게 '그맘때 아이들이 철없게 노는 거'라는 식의 가진 자의 논리로 적당한 타협을 종용하는 주변의 인식에 그녀가 갈등하는 모습이 현실적이어서 어쩌면 나는 더 불편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당장 우리가 겪는 성폭력, 학폭, 인종차별이나 계층 갈등 등 깊게 자리 잡은 사회 문제를 윤리적 문제로 접근하게 만든다.

 

 

“특권을 갖는 것과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263쪽

 

문장의 울림이 이토록 큰 건, 탈세를 일삼던 병원장이 가상화폐를 압류하니 그 즉시 세금을 납부했다는 기사를 본 직후라서 그랬을 것이다. 인성은 개미 오줌만큼도 가져보지 못한 인간이 어쩌다 공부는 잘해 의사도 되고 병원장도 되어 돈을 좀 가져보니 지질한 인생이 상한가를 쳐 탈세부터 배우지 않았을까. 그가 병원장이라는 특권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그 자격에 대해 단 1이라도 알긴 알까?

 

소설은 은근하고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는 대신 직설적이고 노골적으로 "만약 당신의 아이가 그러 했다면 어떻게 했겠소?"라며 묻는다. 부끄럽지만 닥쳐보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정의의 편에 서겠소!"라고 하는 건 아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멜라니의 말처럼 무조건 아이 편이 되어줘야 하지는 않을까? 부모마저 죄인으로 몰고 간다면 아이가 겪어야 할 심적 고통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은 건 뻔하니 말이다. 부모마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견뎌낼 아이가 몇이나 될까?

 

이런 고민과는 다르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의의 편에 서는 니나는 핀치가 그런 양아치로 자라게 놔둬선 안 된다는 각오로 커크와 갈라 서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핀치를 구제하려 애쓰며, '철없을 때 다 그런 거지'라는 인식이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실히 한다. 그런 면에서 아이가 있는 독자라면  자신과 아이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도덕 교과서 같은 소설이다.

 

 

아쉬운 점은 정의를 구현하는 데 있어 진실이 돈에 매수된다는 현실을 소설에서까지 느껴야 하는 건 솔직히 안타깝다. 권선징악까지는 아니어도 인과응보 정도는 보여줘도 되지 않았을까? 단순히 피해자인 라일라가 아픔을 딛고 일어서 법조계에서 일한다거나 과거 아픔을 딛고 새롭게 출발한 니나가 승승장구한다면 그걸로 족한 걸까? 가해자인 핀치와 커크는 아무것도 잃은 게 없고 심지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나 옆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앉을 수 있다면 우린 굳이 정의나 진실을 밝히는데 사활을 걸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아무것도 잃은 게 없었던 핀치의 사과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게 설사 진심이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여하튼 불편한 이야기임에도 깊은 몰입감을 맛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하고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