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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낭독리뷰] 나 아직 안 죽었다 - 낀낀세대 헌정 에세이

by 두목의진심 2021.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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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직 안 죽었다'라니, 남자의 가오를 보란 듯 보여주려는 건가 싶을 만큼 제목이 확 잡아 끈다. 그러다 아주 잠시 '나는?' 싶었다. 사실 나는 내가 386세댄지 X세댄지 어디에 다릴 걸쳐 놔야 하는지 잘 모른다. 70년 생인 나는 X세대 아그들이 "조크든요!"를 외칠 때, 싸가지 없다고 욕을 해대던 기억이 있는 걸로 봐서는 X세대는 아니고. 그렇다고 386도 아니지 싶은데 그럼 낀낀낀 세댄가? 우옜든 세대 구분도 못하고 그냥 막살았나 싶어 당혹스럽다.

근데 저자보다 꼴랑 4년 더 살았을 뿐인데 세대 구분도 못하는 게 막 부끄러워질 찰나 겁나 부러워졌다. 회사를 다님서도 책을 세 권이나 냈다니. 그래서 그는 죽지 않았다지만 별 볼일 없는 난 죽었다. 그것도 아주 바닥까지. 친구가 그랬다. 인간 됐다고. 그럴밖에. 나도 먹고살아야 했고 토끼 같은 아내와 여우 같은 새끼들이 있질 않나. 게다가 이 나라는 장애인에게는 더 가혹한 곳이니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성질을 죽일 수밖에. 쓰다 보니 스멀스멀 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여태 잘 죽이고 살고 있다.

 

 

동시대를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나 몰래 내 이야기를 끌어다 쓴 게 아닐까 싶은 이야기가 툭툭 튀어 올라 심금을 울린다. 특히 고향이라는 공간적 의미가 그가 자랐던 촌 동네 그 어디쯤과 내가 자랐던 서울 한강변의 옥수동 산꼭대기 달동네가 무에 그리 다를까 싶을 만큼 성장통은 비슷했다. 다른 건 그가 고향을 옹산으로 추억하며 슬쩍 귀촌을 고려하지만 나는 대놓고 산꼭대기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제 그 동네는 더 이상 쳐다볼 수도 없다. 로또를 두어 번은 맞아야 가능하려나? 달동네가 아니라 달나라로 바뀐지 오래다.

 

그리고 소년들의 우정과 첫사랑을 간직하고 새롭게 들어갔던 그 학교! 아이 러브 스쿨의 설렘과 도토리의 쌉싸름한 파도를 뒤로 한 채 늙어 버린 지금 현실은 도플갱어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부서가 통폐합되고 좌천의 나락으로 떨어졌어도 꿋꿋하게 버텨야 하는 가장의 무게에 그는 40대에, 나는 50대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일까지 너무 똑같다. 근데 지랄맞은 건 그처럼 나도 떡볶이 체인점 하나 꾸릴 돈도 없어 그냥 숨을 참아야 하는 처지라는 거다. 게다가 나는 사표 대신 로또의 기대도 없다. 그게 내 평생 운빨을 대출에 그 이자까지 다 땡겨다 목이 부러지고도 살아남는데 이미 다 써버렸다. 의사도 가망없다고 집에 데리고 가라는 걸 굳이 살아나 버렸다. 그러니 내게 로또는 똥도 못 닦는 휴지도 못된다. 에이씨 눈물 난다.

 

청년기를 관통한 노래들 속에 그의 청춘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하고, 엄마와 아버지의 향수가 뿌려져 전혀 궁색하지 않은 밥상을 받은 손님처럼 배부르게 느껴졌다. 이미 기억조차 나지 않는 학년별 첫사랑은 어디에서든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어디에서든 나를 한 번쯤 생각했으면 싶기도 한데, 이게 또 아내를 생각하면 그러는 건 양아치다 싶어 말았다. 어쨌거나 많지도 않은 추억을 육각 모양 빠다 맛 사탕을 오지게 까먹고 앉아 있게 만든다.

 

"우리는 남들과 다르게 살기를 욕망하면서 남들이 가는 길만 따라간다." 231쪽​

마누라 말을 들으면 인생 편하다는 만고의 진리를 확인하는 것은 좋은데 마음이 왜 헛헛해지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내 스트레스 지수는 도대체 몇일까 싶다. 저자와 같은 황망한 일을 겪고 있으면서도 공황장애를 아직 맞닥뜨리지 않는 걸 보면 아직 덜 힘들거나 저자의 아내처럼 해탈의 경지일 텐데 과연 어느 쪽일지 이게 또 살짝 흥미롭다.

책은 개인적인 추억과 일상을 맛깔나게 풀어나간다. 개인적으로는 처음은 밋밋하게 시작하지만 읽다 보면 감칠맛이 난달까? 뒷심이 세서 점점 읽맛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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