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 몸과 말 - 아픈 몸과 말의 기록

by 두목의진심 2021. 1. 11.
728x90

 

 

'아픈' 몸에 아픔과 아프지 않음의 경계에 있다는 또 다른 사람, 안희제가 생각났다. 자신의 서사에서 고통을 시시각각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 어쩌면 장애인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와 있는 나 같은 사람보다 더 외로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 사람이 그였다.

 

자신을 바디 에세이스트라고 소개하는 그가 흥미로워 호기심이 일었다. '아픈' 몸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안희제가 했던 "이젠 아프다고 말해야 한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에게는 어떤 서사가 있을까? 나는 또 주야장천 아픈 몸을 어떻게 아프다고 말해야 할까? 가슴과 머리가 쉬지 않고 두근댄다.

 

"오래 묵어 있다가 펼쳐진 말은 고백이 된다." p12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자신을 설명해야 했던 눈물겨운 고백들에서 한참을 아팠다. 어쩜 우린 다르다는 이유로 이렇게나 모진 말을 들어야 했을까. 나 역시 나중에 두고 보자며 오기처럼 눈물과 억울함을 삼켜야 했던 시간들이 떠올라 흐려지는 눈을 감추느라 목을 한참 뒤로 젖혀야 했다.

 

 

"공감이란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를 비틀어 묻기보다 그가 잘 견디고 있음을 묵묵히 바라봐 주는 것인데도." p74

 

어릴 때부터 세뇌 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강박은 나와 다른 타인에게도 안부나 위로를 스스럼없이 건네야 한다는 태도를 만드는 것 같아. 무심코 건네는 위로가 상대방에는 무례일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는 건 그런 행위 뒤에 스스로 착한 일을 했다는 자기만족이 있을 것이다. 친해서 혹은 가족이라서 또는 이해한다 여기면서 무심코 만드는 '관계의 차별'을 묵묵히 견뎌야 하는 사람들은 그 선한 의도를 알기에 더 아프다.

 

"차이가 만성적 단절과 소외를 만들지 않으려면,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p82

 

나는 감히 아팠다고 해도 될까? "안 되는 걸 자꾸 되게 하려다 오는 처연함 속에 갇힌다"라는 말에 목울대가 욱신거렸다. 나는 몸이 기억하는 어떤 행동에도 긴장과 조급함이 스미면 여지없이 강직은 심해진다. 극도로 뻣뻣해진 손가락은 더 이상의 움직임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몸이 기억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렇게 일상에서 자주 맞닥뜨리는 일은 서럽다. 아니 처연하다. 그럴 때 욕설과 괴성으로도 덮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많이 아팠다. 읽는 동안 자꾸 그의 이야기에서 내 이야기가 겹쳐졌다. 신기하다기보다 상처가 덧나는 것처럼 따끔거리며 긁혔다.

 

 

"당신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가도 당신 같은 사람을 내 곁에 붙들어두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p111

 

왜 우리는 남들 다 하는 사랑도 욕심을 내야만 하는지. 욕심을 낸다 한들 다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네가?" 혹은 "네까짓 게?" 따위의 업신여기는 조롱을 당해 가면서도 사랑 따위를 해야 하는지. 누군가를 향한 널뛰는 가슴과 붉은 얼굴을 감추지 못하는 건 우리도 사람이라 서겠지.

 

그랬던 기억이 선명하다. 십 년을 옆에 있던 이도, 그렇게 욕심이라 생각해 밀쳐냈던 이도, 순식간에 스몄던 이도 다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있다가 떠났다. 난 또 그만큼 비워져야 했다. 사랑은 더 이상 믿지 못했다.

 

그의 삶을 정의할 수 없겠지만 '보태지 않는 삶'이 아닐까 싶다. 삶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보태거나 혹은 드러낼 수 없는 결핍을 보태려 애쓰는 게 아니라 시시때때로 변하는 그러면서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 온전히 보여주는 삶. 그래서 이 책은 그의 삶의 기록이자 그의 기도집이다.

 

그의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앞에서 "대신 떠나줄게"라는 말과 "내가 다 해줄게"라는 말 사이에서 어떤 말이 상처가 덜 할까라는 생각이 훅하고 비집고 들어왔다.

 

손가락 하나 딸싹하지 못하던 내가 세 번의 수술과 치아가 다 뭉그러질 정도로 이를 악물고 버틴 재활의 결실은 위태로운 걸음이긴 해도 직립보행이었다. 1년여 동안 병원 천장만 보던 전신마비 환자가 직립보행을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세상은 다름 아닌 푸른 바다였다. 지나가는 말이었다. 내가 이 위태로운 걸음으로 바다를 보러 가는 것보다 내 앞에 바다를 끌어다 놓는 게 쉬운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가자! 까짓것. 우리가 다 해줄게!"

 

무엇을 다해줄 거라 생각했을까? 나는 친구 둘과 5시간이 넘는 기차의 덜컹 거림과 매캐한 버스의 흔들거림 또 위태롭고 더딘 걸음으로 주야장천 걸어야 했던 길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무릎과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전신의 통증에 서너 걸음을 걷고 기댈 곳이라면 무엇이든 찾아 기대거나 주저앉아야 했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바다는 웃음보다 눈물을 쏟아내게 했었다. 결국 고통은 누가 대신 다해주거나 대신해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하고 싶으면 자신이 해야 했다. 보고 싶으면 자신이 봐야 했다. 그래서 겪어야 할 통증이라면 기꺼이 버텨내야 했다. '대신'은 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같이'여야 한다.

 

 

에필로그에서 단호하게 꾹꾹 눌러 힘 있게 적었을 그의 이 말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우리가 만들어낸 장애의 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오해에서 비롯된 언어적 폭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디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p306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