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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

by 두목의진심 2020.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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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제 모든 것은 희진, 그녀에게 달렸다." p12

 

뭔가 소름이 확 돋았다. 활자에서 습기 머금은 6월의 더위가 묻어날 것처럼 끈적해졌다. 자신의 운명이 타인, 그것도 한 공간 속어 있는 누군가에게 달렸다는 선언 같은 비장함이 이 소설을 뜨겁게 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변해버린 내 삶도 뜨겁디 뜨거운 6월이어서 더.

 

이 소설은 변온, 냉혈, 동면 같은 인간에게 붙이기는 어색한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낸 자음과 모음 장편소설상을 수상한, 새 소설 시리즈 8번째 작품이다. 뜨거운 여름을 지나 겨울로 가는, 그래서 그들이 순간적으로 닥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함께 하는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소설이다.

 

 

"정말 누구나 이렇게 순간적으로 변할 수 있는 거라면, 그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걸 버텨내고 있는 걸까." p80

 

묘하게 다른 인경과 희진의 '변온'의 이야기에서 뭔가 달라진 것들에 대한 무심한 폭력을 감지하게 된다. 다르다는 이유가 사회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더위를 많이 게다가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는 것으로 유별난 사람으로 규정되는 희진이나, 또 더위에 멀쩡하게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인경 역시 그런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남다르게 읽히지 않는다.

 

인경이 생각한 것처럼 나 역시 이전과의 삶이 순간적으로 변한 사람이다 보니 그렇다. 인경처럼 한증막에 들어가 있어도 살이 시뻘겋게 익어도 땀 한 방울 나지 않는다. 다만 인경과 다른 건 온도가 오르는 만큼 피부도 뜨거워져 체온 조절은 되지 않아 난 쾌적하기는커녕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그냥 땀만 안 난다. 뜨거운 태양을 직통으로 받아내는 여름, 피부는 뽀송할지언정 체온조절이 안 되는 나는 그 위험한 1도를 넘나드는데 사람들은 그저 뽀송뽀송한 피부를 부러워한다. 난 그 뽀송뽀송함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사람들의 무심함은 어쩔 땐 잔인하기까지 하다.

 

결국 인경의 동면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을 테지만 인경의 변온에 대한 희진의 보살핌은 이유가 궁금했다. 변변히 소통 한번 하지 않았던 직장 동료에서 이렇게 조력자를 자처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서였다. 그리고 나는 왠지 모르게 다르게 변화하는 인경의 몸을 추적하게 된다. 별다른 이유 없이 시작한 채식이 결국 나무로 되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생각났다. 부디 돌아오는 봄, 동면도 끝나길 기대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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