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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자기계발/에세이] 포기할까 망설이는 너에게

by 두목의진심 2020.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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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채울 마지막 1도보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온도를 찾는 일. 그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 어려운 걸 해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다른 건 몰라도 한 성실은 하는데.

 

요사이 복지관에서 새로운 일을 벌이느라 분주한데, 함께 콜라보를 하게 된 책방 여인이 있다. 대표 겸 작가인데 얼핏 보아 이십대의 후반을 불태우는 중인 것 같다. 그의 이십대를 보며 내 이십대가 처음으로 무척 아까웠다. 21살 중환자실로 들어가서 줄곧 병실 천장만 보고 지냈던 시간.

 

의사가 호언장담했던 죽을 거라거나 누워 숨만 쉬고 살아야 한다는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고 벌떡 일어선 것에 감격해 마지않던 내 푸르디푸른 이십대를 그동안은 사실 아파하거나 후회하지 않았는데 하루를 쪼개서 쓸 정도로 바쁘게 사는 그의 에너지에 그동안 갑작스러운 장애를 핑계로 이 정도면 나는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았어'라며 적당히 살았다.

 

그래서 늘 하고 싶지만 그러지 않았던 일들이 밀린 숙제처럼 쌓여 있다는 걸 알았다. 이제라도 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아 씁쓸했다. 이젠 대부분의 일들에서 망설이는 내가, 섧다.

 

"그래, 밥이라도 편하게 먹어야지." p60

 

동료들과 혼밥, 혼술 매치 끝에 나왔다는 이야기에서, 복지관을 옮기고 한동안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던 일이 떠올랐다. 다들 인근 식당을 찾아 나가고 나 혼자 창가에서 도시락을 풀어 놓고 꽤 오랜 시간 혼밥을 했다. 그런 모습을 직원들이 보면서 하나같이 "왜 혼자 먹느냐"라고 물었다.

 

왜긴? 나가 봤자 휠체어가 들어갈만한 식당은 주변엔 없고, 도시락을 싸온 직원이 나 혼자뿐이니 그런 거지. 누군가 도시락을 싸왔다면 설마 각자 앉아서 혼밥을 했을까라는 눈빛으로 "편해서"라고 답을 했다. 근데 알고 보면 혼밥을 하면 좋은 점이 훨씬 많았다. 대화는 못하지만 여유 있게 천천히 먹게 되고 책을 보기도 하고 창밖 풍경에 따라 먹다 말고 멍도 때릴 수 있어 편하고 좋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길든 짧든 어떤 시간이든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

 

 

난 AO형이다. 소위 A형처럼 보이는 O형. 뭐 혈액형으로 성격적 특질을 이야기하는 게 엉터리라지만 내 주변을 보면 그다지 엉터리라고 하기도 어렵다. 친구들 중에도 그렇지만 아내나 딸을 보면 인터넷 쇼핑으로 옷 하나를 살 때도 적게는 수십 번의 망설임 끝에 내 확신까지 거쳐야 살 정도로 신중하다. 반면 나와 아들은 그냥 산다. 이런 분명하고도 결정적 차이가 있으니 무턱대고 엉터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어쨌거나 친구 많고 대장 노릇하던 극한의 외향적이었던 내가 목이 부러진 후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내향적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원래 성격은 또 어디로 간 건 아니라서 안팎이 다른 채로 사람들에 따라 적당히 스며들며 산다. 이렇게 '척'하거나 다른 '채'로 사는 일은 그의 말대로 많이 지치고 힘들다. 어느 순간 내가 어떤 모습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있어 참 많이 공감됐다.

 

그리고,

 

"그동안 없던 찬사가 쏟아지는 날. 이런 날은 그저 마음껏 우쭐대 보자." p82

 

정말 그렇다. 누군가 상대를 칭찬할 때는 그럴만해서다. 괜히 그렇게 안 한다. 시간도 관심도 별로 없으니. 특히나 나처럼 어릴 때부터 칭찬보다는 질책이나 야단이 몸에 밴 세대에게는 받는 것도 어렵지만 하는 건 더 어렵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았다면 마음껏 누려도 좋다.

 

대화 중에 중간중간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가는 사람처럼 읽다 말고 메모하느라 리듬이 끊어진다. 그게 그러니까 큰일이 아니더라도 어깨에 뽕이라도 넣은 것처럼 자존감이 올라가는 순간을 만들어 주는 적당한 타이밍에 건네는 격려와 위로, 용기 한두 스푼 심어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그 타이밍에 시크하게 툭 던지는 말로 멋있고도 싶지만 타이밍도 찾지 못할뿐더러 격려하는 마음으로 질책을 하고 있을 때가 심심치 않게 있어 그런 상대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위로와 격려는 아무나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를 그저 버텨내며 살았다고 해도, 오늘 하루가 아무 의미 없이 소진만 된 것 같아도, 의미 없는 날은 없다. 버릴 날은 없다." p216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에필로그를 보다 달콤한 사탕이라 생각하면서 입안에 굴렸는데 씁쓸한 느낌이다. 나야말로 그런 사람이라서. 꿈꾸지 않는 사람. 그가 소박하다고 말한 것들은 사실 꿈이라기보다 바람 정도지 않을까. 자신의 미래를 걸고 소박한 밥 한 끼가 꿈이라고 하면 스스로에게 좀 미안한 일이겠다 싶기도 해서. 아무튼 어린 시절 얼토당토않는 대통령이나 파이브 스타로 시작해 학년이 올라가면 갈수록 곤두박질하던 꿈조차 목이 부러지고는 더 이상 가져보지 않았다.

 

복지관을 옮기고 첫 직원 연수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센터장 같은 기관장을 스스럼없이 미래 계획이라고 밝히는 동료들을 보면서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놀랐던 생각이 났다. 그때도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급급하던 나 자신이 많이 초라했었는데 그로부터 벌써 5년이 지났음에도 난 여전하다.

 

처음에는 요즘 아나운서들이 앞다퉈 출판 경쟁이라도 하나 싶을 정도여서 그저 조금 이름난 아나운서의 듣기 좋은 소리로 도배된 책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는 자신의 실패를 통해 배운 지속 가능한 것들의 믿음을 꿈이라는 단어로 녹여 내며 진심을 담았다. 그건 분명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위로다. 따뜻하게 전하고 있으니 그냥 넙죽 받으면 된다.

 

그럼에도 뭐가 되어야겠다거나 이루어내겠다거나 하는 걸 잊은지 너무 오래되다 보니 이 책이 조금 낯설기도 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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