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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현대문학/시] 우리는 미화되었다

by 두목의진심 2020.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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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몰라뵀다. 댓글도 시가 되고 있었음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이 기사에 답답하고 시에 먹먹해지기를 반복했다.

제기랄.

한국이란 공간과 21세기라는 시간과 자본주의라는 이념은 도대체 이 나라에서 어떤 콜라보를 이뤄내고 있는지 가늠이 안 된다.

지금 정신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의 전작도 매우 궁금해졌다.

 

툭하고 터졌다.

오십 넘은 처지에 많아진 거라곤 뱃살과 주름과 눈물이 고작인데 그중 눈물이란 놈은 참 시도 때도 없다.

고작 '세상이 기울고'라는 꾹꾹 밟아 적은 문장에 등골을 따라 한기가 소름을 돋운다.

기어이 눈물을 뽑는다.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을 말을 앞세우며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어디로도 가지 않고 우리의 사랑이
거기 머물러 있기를 바라며
삼 년째 안개 같은 봄날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을 말을
해도 될는지

<가만히 있으라> 중

 

이렇게 아픈 시에 감탄이라니 되려 미안해 죽을 지경이 되고도 남아서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서 몇 자라도 몇 줄이라도 끌고 들어오지 않을 수 없다.

 

 

그와 그의 벗들이 억수 같은 세월을 맞으며
먼 데서 오지 않는 세상을 빗맞히고 있을 때
물대포를 쏜 자들만은
출세를 명중시켰음을.

<농부의 죽음> 중

 

또 청명한 가을 하늘이 높아지니 덩달아 하느님도 높아지셨을 테니 그 틈을 노려 죄를 짓겠다고 공포한다. 그것도 제법 큰 죄를.

그런데 그게 다름 아닌 연애다. 사랑 말이다. 지금 이 시대는 사랑도 연애도 죄가 되는 시대다.

 

또 하필 지구가 둥글어서 다른 각도로 서성여야 하고 그래서 사랑이 어긋난다는 이 뼈아픈 통찰은 도대체 시인은 어디에서 떨어지는 건지.

그저 조용히 따라 읊는데도 어긋나버린 각도에 어질어질하다.

 

그리고 사람이다 보니 분노의 감정이 들끓어 쓸개 빠진 곰들에게서 고개를 떨궈야 했다.

고작 쑥과 마늘을 그들 앞에 놓아주어야 하나를 고민하고, 그걸 다 먹고 꼭 인간이 돼서 그 옛날 자신보다 못한 인간들에게 처절하게 복수하라고 일러둔다.

 

환하게 빛나는 시도 있다. 물론 왜 아니겠나.

하지만 가슴 저리고 아린 시들이 너무 많아 그저 빛나도 웃을 수 없었다.

시인도 그러했으리라 짐작한다.

 

시인의 필명을 보다 그저 나무토막이던 피노키오에게 생명을 주었던 제페토처럼 그저 활자에 지나지 않던 뉴스 기사에 생명을 불어 넣으려 애쓰려 그런 것인지 또 짐작한다.

두고두고 그를 기억하리라는 예감이 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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