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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사회/정치] 10% 적은 민주주의

by 두목의진심 2020.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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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을 읽으면서 민주주의는 신성하고, 그 신성한 것에 의문을 갖는 일. 어쩌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서 오는 여러 괴리들보다 의문을 갖고 질문을 던지는 일이 민주주의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이 미대선이 치러지기 전에 나왔으니 궁금하다. 저자는 트럼프를 어떻게 바라볼까 싶다.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그를, 또 몇 백 년 이어온 미국의 자존심이라 일컫는 민주주의의 훼손을 목도하는 미국인들을 저자는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궁금증이 머리말을 읽는 내내 떠나질 않았다.

 

몇 페이지를 읽으며, 아니 곱씹었다는 편이 맞겠다. 누군가 의견을 제시하면 자신의 생각이 모든 이의 신념인 양 대변자를 자초하며 죽자 사자 억지스러운 반론을 제기하는 인간이나 혹은 본 마음을 숨긴 채 상대방을 배려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나서 뒤돌아선 살벌하게 물어뜯는 인간들이 떠오른다. 물론 나 역시 그들의 입장에선 둘 중 한 부류로 급이 나뉠 수 있겠지만 어쨌든 민주주의가 모든 해결책이라 믿진 않는다.

 

"하지만 나는 얼버무리고 싶지 않다. 나의 주장을 당연한 것으로 가정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주장하는 정치 개혁은 현실 세계에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교양 있고 객관적인 기술자들로 대체하는 '깡통 따개를 가정'하고 싶지 않다." p20

 

경제학자인 저자가 논하는 민주주의 정치, 그것도 적당히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근거와 자신감으로 넘친다. 민주주의를 두 가지로 정의하는 게 기근으로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것과 유권자인 시민을 대량 학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니 신선한 정의 이기기도 하거니와 10살이던 내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5•18과 그 이후를 비교해 보자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대답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성장이 경제 성장을 담보하는지, 경제를 둔화시키는지, 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전문적인 수준의 합의란 없다." p32

 

뭐랄까 민주주의라는 이념 하나에 대한 함의나 주장이 이렇게 다채롭게 읽힐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조금은 덜 민주스럽자고 하질 않나 사치품이라 명명하며 국가가 부유해질수록 민주주의가 발전될 가능성을 점치는 이야기는 다소 모순적인 관점이지 않은가 싶으면서도 딱히 반박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찾지 못한다. 학살은 없다 하더라도 경제적 부유함이 없다 하더라도 독재가 아니더라도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을 테고 또 민주주의가 뿌리 깊게 내려 박혀 있는 나라라 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배제와 소외와 학살은 아니더라도 죽음이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민주주의란 광범위한 시민이(좋은 정책 결과를 가져오는 것과 상관없이) 통치 과정에 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p37

 

민주주의를 심플하게 '통치 과정에 관여' 하는 것으로 정리하는 저자는 다양한 학자들의 논의를 제시하고 검증하며 독자를 설득해 나간다. 생각이 지배 당하는 느낌, 무서운 책이다. 또 정치인에 대한 해석 역시 재밌는데,

 

"결국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치이고, 그것도 단기적인 스윙 스테이트(미국 대선을 결정짓는 중도 지역)에서의 정치다. 장기적인 경제 번영을 위해 냉정하고 침착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p70

 

선거 때만 반짝 유권자의 편을 드는 얍삽한 정치인들의 근성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인의 기본 자질임을 지적하는 내용에는 민주주의에서 환경이나 에너지 분야 같은 다음 세대를 위한 일들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납득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선거를 매년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좀 황당하기도 한 '유권자들의 능력'을 운운하는 내용은 계급이나 신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시스템이 아니라 어쩌면 정치판에 놀아나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관심'으로 몰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어 좀 불편했다. 교육 수준과 경제적 수준이 정치에 대한 관심과 파악으로 연결된다는 게 사실일까? 그리고 가짜 뉴스에 더 쉽게 노출될까? 교육 수준이 높으면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민주주의 지수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측정이 가능하나? 같은 놀라움과 흥미로웠던 35퍼센트 부족하다는 싱가포르 민주주의가 궁금하다. 덧붙여 한국의 지수는 어느 정도일지도. 사이좋게 수감 중인 두 전직 대통령 시대야 말할 것도 없지만 현 정부도 딱히 지수가 높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읽고 보니 솔직히 정치든 경제든 뭐든 완벽하거나 100%로 채워진 것이 있을까? 있어도 오히려 그게 더 불완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어렵지만 확실히 이해해야 하는 조금은 헐렁한 민주주의는 무엇일지 고민만 잔뜩 떠안은 느낌이다. 민주주의는 확대보다 축소가 나을지도.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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