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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에세이] 세빌리아 이발사의 모자

by 두목의진심 2020.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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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동화'라는 부제처럼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을 마치 넘실대는 푸딩을 숟가락으로 떠올린 것처럼 고스란히 떠다 놓았다. 그 시절의 시골과 그때의 언어들로 묘사된 주인공 참댕이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덩달아 내 유년을 기억하게 하기도 한다.

 

나 역시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에 다였지만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나고 자란 덕에 '서리'같은 새콤달콤한 이야깃거리가 없어 작가가 풀어내는 그때만 누릴 수 있는 나쁜 짓을 못해봐서 좀 아쉽다.

 

 

아홉 살 인생이나 애니메이션 검정 고무신의 기영, 기철 형제가 떠오를 만큼 작가가 펼쳐놓는 유년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살짝 미소 짓게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추천사에서 말한 것처럼 '재미'를 느끼려면 중년이거나 그 시기를 좀 넘겨야 공감되지 않을까 싶다.

 

전쟁 후라는 어수선한 배경도 그렇거니와 "어떠한 물상조차 사물화되지 않았다. 다만 횡액으로 무장한 도발적 어둠의 공기만 가득하였다.(p83)"라거나 "굳이 신을 신으로서 정의하지는 말자고 모든 신과 신들에게 종용하였다.(p87)"처럼 어려운 단어나 한자의 의미로 말장난처럼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다소 동화라고 하기엔 여러 세대에게 공감대 주기에는 쉽지 않다는 염려도 된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 시절을 그리고 있다는 맥락에서 그 당시의 언어라고 하지만 살짝 이질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개정판임에도 세빌리아 이발사를 둘러싼 장애에 대한 표현 역시 노골적으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살짝 든다.

 

어쨌거나 읽는 동안 이런저런 문장을 만나 흐름이 끊어지기도 했지만 웃통을 벗어젖힌 채로 볼록한 배를 맞대던 명선이와는 어찌 되었는지, 또 세빌리아 이발사의 정체는 무엇인지 궁금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들기도 한다.

 

 

​끝까지 읽고 나서야 명선과의 관계는 유년기의 풋풋한 사랑이 다 그렇듯 아쉬움을 남기지만 세빌리아 이발사의 의미는 오히려 좀 당황스럽다. 참댕이에게 그저 혼란하고 힘들었던 전쟁이 남긴 풍경처럼 스치고 지나는 그저 '미친' 사람 2 정도의 역할이었을 거라 짐작했던 거와는 달리 막판에 울컥한 사연을 던지며 단박에 조연이 돼버린다. 더구나 참댕이가 무심하리만치 담담하게 그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안타까운 가족사를 고백하는 데야 감정이 요동칠밖에.

 

동화라기보다 가족에 대한 아련함이 가득한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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