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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영화/소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by 두목의진심 2018.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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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이미 영화로 충분히 아릿한 감정을 경험했음에도 아버지 료타에 빙의되 그의 섬세한 감정선과 표정이 떠오르며 읽는 내내 마음이 다시 한번 흔드렁거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꾸만 시선이 게이타의 얼굴로 빠져들 듯이 집중되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분산시키고 싶었다." p39


온갖 정성으로 6년을 키운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닐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도대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솔직히 가늠은 되지 않지만 일에 빠지든 뭐라도 하지 않으면 깊어지기만 할 상처를 알기에 료타의 행동이 더 아프게 전해진다.

애정이 애증으로 바뀔 수 있는 그 간극을 상상할 수 있을까. 아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 자체가 이미 미안한 일이 되어 버린 료타의 시선이 떨리듯 감정도 함께 떨린다.


"역시 그런 거였어" p46


영화에서 차창을 주먹으로 내치며 분노하던 장면이 선명해진다. 그때도 그랬다. "아.. 료타는 이미 게이타에게 멀어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복잡해졌었다. 의사에게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선고'를 받는 장면에서 실낱같은 바람이 툭 하고 끊어지는 순간 료타 역시 자신의 아들이 아님을 '확신'해 버리는 장면. 그리고 중얼거리듯 내뱉던 료타의 이 말이 다시금 마음을 가라앉게 만든다.

어쩌면 료타는 그동안 성에 차지 않던 게이타의 성장과정이 자신을 닮지 않았지만 아내 미도리를 닮았겠거니 하며 납득하던 시간이었을까. 그렇게 자신을 닮았으면 하고 노력해왔던 시간들이 한순간에 농락당했다는 느낌이었을지도. 어쨌거나 게이타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었음을 확신하며 자신의 '핏줄'을 확인하고 싶은 거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건 자신을 닮은 유전자의 확인이자 잃어버린 6년에 대한 확인이었을 수도.

그런데 사실 그보다 더 가슴 아팠던 건 미도리의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난 엄만데.."라는 미도리의 자책에 가까운 절망이었다. 이 장면에서 시야가 가려져 한참을 멈춰야 했었다.

부모인데, 그것도 자신이 직접 나은 아이를 몰라봤다는 자책은 모든 면에 뛰어났던 남편에 대한 위축감으로 시달리던 그녀의 상실감과 죄책감이 얼마나 컸을까. 너무 아프다. 그러면서 줄곧 "나였다면 어떨까?"라는 질문하게 된다. 핏줄을 찾아 교환을 선택했을까


"그러나 분명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p81


이 말만큼 료타의 혼란스러움을 보여 주는 게 있을까. 자신의 친아들 류세이와의 첫 만남. 음식을 흘리고 빨대를 잘근 씹고 자신과는 닮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류세이를 정신없는 쇼핑몰 푸드 코너에서 그것도 몰래 살짝 훔쳐봐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하는 거죠."


아마도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을 반성하게 만들었던 대사가 아니었을까. 활자로 박힌 문장이 또 한 번 가슴을 싸하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은 시간"이라는 유다이의 말처럼 기다려줄 줄 모르고 "아버지란 일"도 잘 해내지 못한다. 언제나 조급증에 걸린 사람처럼 아이들을 몰아세우고 료타처럼 엄격하고 재단하는 아빠로 살고 있다. 또 반성만 한다.


"져본 적이 없는 녀석은 정말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군." p159


6년의 시간을 보낸 게이타와 6년의 시간을 잃어버린 류세이 모두를 키우겠다고 경제력을 앞세워 자신만만해 하는 료타에게 유다이가 격노하는 부분은 영화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유다이의 말이 한참을 생각하게 만든다. 관계라는 건 역시 시간일지 모른다. 특히 아이들에겐 더욱더.

과연 료타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두 아이를 원했던 것일까. 유다이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내주고 싶지 않았던 걸까.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해주는 게 아버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 걸까. 그럼 도대체 나는 아버지의 역할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료타의 모습에서 자꾸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료타는 분명 자신에게 엄격했다. 그런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요구한다.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이 완전 똑같이. 어떤 사정이든 용서하지 않는다. 그 앞에 기다리는 건 질타만이 아니다. 경멸이다." p207


료타는 자신과 닮지 않은 게이타에게 실망 해왔다. 자신과 닮은 점이 많은 류세이에게는 자신과 닮은 점에서 어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료타는 자신의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다. 그런데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모습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가족의 의미는 함께 '살고 있는'이 아닌 함께 '살아온 시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각 인물의 표정이나 감정선을 영화보다 책이 좀 더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달까. 암튼 이 무더위에 가슴까지 따뜻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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