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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여행/에세이] 내 뜻대로 살아 볼 용기 - 여행으로부터 얻은 소중한 삶의 지혜

by 두목의진심 2018.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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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뭐뭐할 용기'라는 심리서가 유행처럼 번진 데에는 현대인들이 치열한 삶을 살아내느라 지친 정신과 마음을 다독일 필요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앞다투어 심리학자이나 정신의 등이 아들러를 앞세워 타인에게 맞춰 정작 '나'를 잃은 사람들을 다독여 주었다. 이 책 <내 뜻대로 살아 볼 용기> 역시 여행을 통해 계속되는 치열함은 잊고 자신만의 삶을 찾는 과정을 담아낸다.


"'학교와 회사를 다닌다'라는 행위에 집착하며 살아왔다. '살아남는다'에만 집중하던 날들이었다."라는 문장이 가슴을 먹먹하게 짓누른다. 어느 누구든 그러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외우라는 것만 외우고, 하라는 것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학교와 사회에서 가르친다. 결과로 우린 경쟁만 하는 사람들이 되고. 그저 살기 위해 일하는 건지 일하기 위해 사는 건지 이유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말이다.

지잡대를 나와 싱가포르로 해외 취업에 성공하고 왜 하는지도 모르는 일을 5년 넘게 하다가 사표를 던진 저자는 용기 있는 것일까 아니면 무모한 것일까. 예전에 비슷하게 싱가포르로 취업에 성공한 <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넓은 세상 일할 곳을 많다는 저자의 신념이 빛났던 책. 그래서 딸아이가 읽어보길 바라는 부분을 책갈피를 찔러 넣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그렇게 여행은 설렘보다는 불안으로 시작되었다." p13


한데 이 책은 일이 아닌 여행으로 스스로 빛나는 삶을 찾는다. 어쩌면 저자의 말처럼 여행은 설렘보다 불안이나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낯선 곳, 낯선 사람, 낯선 냄새와 공기 그리고 낯선 문화. 그런 온통 낯설기만 한 곳으로 혈혈 단신 뛰어들며 느끼는 쿵쾅거리는 심장은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여행은 언제나 유혹이다.


"우리는 살면서 단 일주일 동안 지냈던 곳은 침을 튀겨 가며 극찬을 하지만 내가 평생 살아온 곳에 대해서는 욕을 한다."라는 그녀의 말에 웃지 않을 수 없다. 여행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이고 명쾌한 정의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찾으면 행복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찾아도 결코 행복하거나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이 사내가 여실히 보여 준다." p76


고흐에게서 이런 감정의 결을 찾는 이 여인네의 감성적 깊이가 놀랍기만 하다. 안쪽 주머니에 언제나 사표를 찔러 넣고 다니면서도 더럽고 치사하고 분노스럽더라도 침 한번 꿀꺽 삼키고 오늘 하루만 버티자는 심정으로 366일을 만들어 내는 기적을 보여주는 우리의 모습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해피한 모습을 찾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 고흐의 천재성과 처절함에 위로를 받는다.

'히치하이킹'은 들어 봤지만 '카우치서핑'이라는 낯선 여행 법도 배운다. 더구나 얌체가 되지 않는 법도 함께. 그나저나 나달 아저씨가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게 만든 그녀를 슬쩍 보고 싶다. 매력적이라는 그녀가 궁금해 블로그라도 들어가 볼까 했지만 말기로 했다. 그저 여행자의 여정을 같이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녀의 생각과 글은 이미 충분히 매력적이다. 근데 이 처자는 네덜란드도 독일도 홍등가는 왜 자꾸 찾는 걸까. 그녀는 홍등가에 나는 그녀에게 호기심이 들끓는다.


"사람들은 가끔 SNS에 올라오는 외국 생활을 접하고서 부러움을 표시한다. 하지만 말할 때마다 두세 번 더 생각해야 하는 건 참 피곤하다." p129



"그건 한국을 나와 사는 사람이라면 감당해야 하는 몫인 것 같아.  그냥 안고 가는 거지." p131


보이는 것과 현실은 다르다는 의미가 충분히 공감된다. 또 한국 사람으로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멀어진다는 소외감이 드는 것'에 대한 징징거림으로 들리는 것은 어쩌면 로망에 가까운 외국 생활에 대한 부러움이 아닐까. 지긋지긋하게 부조리한 대한민국에서 나는 그저 버티고 살아야 하는 팍팍한 현실에서 오는 자괴감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이 통하지 않아서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기도 한다.

독일에서 구애 아닌 구애를 하던 나달 아저씨나 여행 가이드를 하면서 애국심에 불타 정작 자신은 이방인들의 생각과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던 불가리아 처녀의 이야기나 같은 불가리아인이지만 애국심 넘치는 이 처녀와는 다르게 변태 히치하이커가 등장한다. 또 방콕과 이스탄불에서 뜻하지 않게 호갱이 되어버린 저자의 생생한 이야기들은 빨려 들게 만들기도 하고, 시작의 웨딩촬영과 끝의 묘지 속에서 담담한 사라예보의 기묘한 장면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 그들의 무심함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1시간 앞의 일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고, 그것이 사람 때문에 일어나다는 게 참 재미있다." p247


어쩌면 그녀의 에필로그처럼 여행은 "그저 익숙했던 곳을 벗어나 버킷리스트에 한 줄 긋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오게 되는 일처럼 여행도 인생도 결국 '낯섬'에 대한 용기가 아닐는지. 여행'지'를 찾는 획일적인 여행서와는 다르게 '순간'을 음미하게 만드는 매력 넘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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