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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교양/에세이] 고백, 손짓, 연결 - 가혹한 세상 속 만화가 건네는 위로

by 두목의진심 2018.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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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웹툰을 보지 않는다. 웹툰에서 화제가 되고 영화화되거나 단행본으로 나오고 나서야 그게 웹툰이 원작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저자가 말하는 만화가 서브컬처라서 그런 건 결코 아니다. 다만 그림이든 활자든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읽는 걸 선호한다. 집중해서 활자를 읽으며 무의식적으로 책장을 넘길 준비를 하고 있는 걸 깨닫는 순간을 좋아한다. 내게는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쓱쓱 내린 마우스질을 성의 없달까.


"이 책이 나를 닮은 평범한 서브 휴먼들에게 작은 공감이나 위로가 될 수 있으면 한다. 평론이라기에는 무언가 가볍고 에세이라기에는 무거운, 그런 어중간한 무게감을 가진 책이다." p11


어쨌거나 이 책에 등장하는 만화와 웹툰에 그려진 인생에 대한 여러 서사의 이야기는 그저 서브컬처 수준으로 키득키득 거리며 웃어넘기기만 했던 자신이 좀 쑥스럽기까지 하게 한다. 주류의 문학을 하지만 비주류인 서브컬처 주위를 어슬렁거린다는 저자의 수줍은 고백이 시작부터 마음이 쓰인다. 게다가 자신의 글에 대한 조심스러운 평가 역시 기대된달까. 

읽는 내내 내 인생의 만화는 뭘까 생각했다. 나는 소장용으로 꽤 여러 만화를 비닐도 뜯지 못한 채로 책장에 고이고이 모셔둔 작품들이 있다. 책을 읽다 말고 책장으로 가 훑는다. 역시나 <슬램덩크 양장본>인가 싶은 찰나 
<이나중 탁구부>가 눈에 들어온다. 마에노와이자와를 비롯한 비주류 녀석들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웃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수업 시간에 교과서 사이에 넣고 읽으며 키득거리다가 죽도록 맞은 기억을 소환한다. 그런데 이제는 이들의 서사가 궁금해졌다.


한때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꽤 오래 일했었다. 책의 첫 에피소드를 장식하는 <덴마>의 작가의 이름이 낯익다. <누들 누드>란 작품을 제작한 업체와 제작을 함께 하기도 했었다. 묘한 기분이다. 한데 그가 웹툰을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첫 에피소드의 덴마의 이야기는 강렬했다. 8년이 넘도록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친'형'처럼 의지하고 따랐던 선배가 있었다. 당시 아내가 막 출산을 한 이후였고 나는 호기롭게 시작했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막 문을 닫은 시기였다. 자신이 진행하는 작품을 도와달라는 말에 거의 무보수로 제작에 참여했다. 한데 자신의 잘못을 모른 채 하며 다 내 탓으로 돌리는 통에 호되게 뒤통수를 맞았다. 그리고 정나미가 떨어져 그 바닥을 떠났다.

한데 아직도 미련이 남은 애니메이션을 떠올릴 때면 그 선배를 생각한다. 그의 일상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규오가 지로를 심상으로 괴롭히는 것처럼 '그'도 그렇다. 웹툰 <덴마>를 보지 않았음에도 규오라는 존재가 짜증 나버렸다.


자신이 오롯이 자신으로 삶을 살아나간다는 게 참 어렵다. 일반화하는 게 못마땅할 사람도 있을 테니 "그냥 나는 그렇다"라고 하는 게맞겠다. 내년이면 나이 오십인데 아직 어른의 반열에 오른 것 같지도 않다.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왜 사는지 오오츠키처럼 진지하게 묻지도 치열하게 고민한 적도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지하에 감금되어 있는 일상에서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지상에서 살아가는 나는 왜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약간 우울해졌지만 오오츠키처럼 자신만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설득'이라는 단어가 힘주어 읽게 되는 단어가 돼버렸다. "글쓰기는 결국 타인을 설득시키기 위함"이라는 말이 적잖이 마음을 흔들었다. 작가의 비장함도 그렇지만 서브컬처라 분류한 만화에서 이토록 눈앞이 번쩍이게 되는 깨달음 역시 그렇다.

나는 살짝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다 싶었다. 그래서 줄곧 글쓰기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책 속에서 등장한 질문이 느닷없이 내게로 향한 느낌이 들었다. "글을 왜 쓰려는가"라는 질문에 나조차 설득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다. 좀 더 우울해졌다.


"한 개인의 죄의 무게가, 그가 살아간 시대의 구조적 문제점과 함께 결정되는 것이다." p144


<신과 함께>는 웹툰이 아닌 영화로 봤다. 인간사에 대한 거대한 서사가 권선징악으로 귀결된다는 게 어쩐지 미덥지 않았다. 미덥지 않다기 보다 뭔가 아쉬운, 이리도 복잡 미묘한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정해진 선과 악으로 귀결 시킨다는 게 어쩐지 불합리하달까. 그런 건 역시 인간과 사회 구조가 가진 구조적 문제점이겠거니 생각하니 갑질의 주체가 '입장'의 문제로 생각되버렸다.



"팀장님이라는 캐릭터가 인기를 끄는 것은, 그가 보이는 가족적 우애가 자신의 권위를 먼저 내려놓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격의가 없고, 소탈하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믿으며 먼저 손을 내밀기에, 팀장님은 직장 상사가 아닌 수평적 관계에 선 한 인간으로서 모두에게 가서 닿는다." p186


개인적으로는 늘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는 편이다. 하는 일도 그렇고 내 스스로도 장애라는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점이 있다 보니 그렇다. 그런데 웹툰 <미지의 세계>에서 저자가 강연 중 미지의 여학생이 했다던 말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조별 과제나 MT, 모임, 회식 등에 버젓이 참석하는 것은 꽤나 많은 희생이 전제되어야 하는 일이라는 점이 너무 가슴 아렸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청춘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미지'에게서 타인의 세계를 생각하고, (가)족같은 회사에서 진짜 가족 같은 팀장과 이 대리를 통해 이 시대의 연결을 고민해 본다.

1장 <고백>을 통해 저가는 자신의 삶 언저리를 보여주며 여러 결의 고백을 은근하게 하고, 2장 <손짓>에서는 그러한 삶의 구조적 문제나 갑질 같은 부조리에서 신음하는 소시민들에게 위로의 손짓을 보내며 다독다독하거나 쓰담쓰담 하고 있다. 3장 <연결>은 결국 모든 것은 '사랑'이다. 그게 연애의 세포로 무장된 것이든 동료와 함께 고군분투한 시간이든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든 세상 모든 연결에는 당신과 사랑이 있다는 점을 확실히 전한다.

작가의 세심한 감성이 마음에 와닿았다. 오래 기억될지 모르겠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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