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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결혼/에세이] 여자 친구가 아닌 아내로 산다는 것 - 유쾌, 상쾌, 통쾌하게 전하는 결혼생활 에피소드

by 두목의진심 2018.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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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친구가 아닌 아내로 산다는 것>이란 제목인데 '남자 친구가 아닌 남의 편으로 산다는 것'이라 읽혔다. 추천의 글에서도 언급하지만 작가의 일상을 훔쳐보는 듯하다. 그러면서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내 아내를 책 속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마주하게 된다. 쿨내 진동하는 작가의 글이 20년이 된 내 결혼 생활을 들춰 보게 만들었다. 묘한 감정의 파동이 생겨 버렸다.

"그래도 아깝지 않다. 헤어진 남자가 아닌 이상, 연인의 옷값은 아깝지 않다." p23

오늘도 역시나 
퇴근하고 지친 몸을 끌고 들어오는데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득이 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득템" 했다고 외친다. 마치 무공훈장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그리고 오천 원짜리 원피스를 들어 올린다. 이럴 땐 뭐라고 반응을 해줘야 하는지 매번 늘 난감하다.

아내는 작가와 비슷한 사람이다. 자신의 옷은 싼 것만 고르지만 내 것은 고가의 브랜드만 고집한다. 오죽하면 동료들은 내가 금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은수저쯤은 된다고 오해(놀림)도 한다. 없는 살림에 있는 사람처럼 허세작렬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게 마뜩잖아 매번 아내와 신경전을 벌이지만 '일하는 사람이 후줄근하면 안 된다'라는 게 아내의 지론이다. 근데 지도 일하면서 나만 포장하는 게 문제다.

작가처럼 아내 역시 내가 여전히 후광(처음 만났을 때 내 머리 뒤에서 후광이 비쳤다나 뭐라나)이 터져 나오는 남자친구였을까. 오늘도 내 앞에서 오천 원짜리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믹스 커피를 마시며 아주 해맑게 웃는다. 이십 년을 살고 있지만 오늘 이 순간은 아내가 아닌 여자친구처럼 사랑스럽다. 질 좋은 커플 티라도 사러 나가자고 해야겠다. 이런 설렘을 돌려준 작가가 고맙다.


읽으면 읽을수록 피식피식 웃음이 번진다. 아이스크림 하나에 사랑의 무게를 이야기하는 작가의 "왜 나는 니 취향을 아는데 너는 내 취향을 몰라?"라는 투정에 웃고 말았다. 꼴랑 아이스크림 하나에 서러움이 북받치는 신혼이라니. 그러다 법정 스님이 "하는 것과 해주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아주 기가 막힌 이야기라 강의할 때면 종종 써먹는다. 그 차이는 다름 아닌 '보상'이다. 대가를 바라느냐 바라지 않느냐의 차이.

이번에는 이 부부의 유럽 여행기를 읽다가 빵 터졌다. 내 신혼여행의 기억이 떠올랐다. 너무 행복하고 스펙터클했던 신혼여행. 나는 온전한 직립보행이 어려운 장애인이다 보니 여행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일생에 한 번뿐인 신혼여행은 무조건 해외의 근사한 휴양지로 가고 싶었다. 여행사에 내가 다른 신혼부부들과 함께 다니면 서로 불편해지니 일정을 조정하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관광이나 다른 일정을 빼고 다른 일행들보다 하루 먼저 섬에 들어가고 하루 늦게 나와 마지막 일정만 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 역시 작가 부부처럼 '영어 불만증'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살짝 긴장하는 아내에게 "나만 믿어! 이래 봬도 10년 차 굿모닝 팝스 열혈 청취자야!"라며 호기를 부렸다.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에서 가이드는 우리를 두고 다른 일행에 합류하러 떠났다. 이제 배만 타면 된다.

그런데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덥고 습한 날씨를 견디다 못해 편의점 앞에 섰다. 순간 영어 불만증이라는 사실이 불안감으로 엄습했다. 아내 얼굴 한번 보고 빤히 쳐다보는 직원에게 혀를 있는 대로 굴려가며 "Could you get me some Coke?”를 날렸다. 강남 영어학원 출신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라 생각했다.

아내 얼굴을 보니 믿음직스러운 표정을 짓고 이었다. 순간 해냈다는 뿌듯함이 치밀어 오를 때쯤 직원은 콜라 대신 "What?”을 돌려줬다. 거기에 기괴한 표정을 더해. 당황스러워 문장을 꼭꼭 밟아가며 천천히 다시 한번 말했다. 콜라 좀 제발 달라고. 그런데 직원은 역시나 "what?”을 돌려줄 뿐이었다. 이때 아내가 슉~하고 한마디 던진다.

"Colra(콜라), okay?"
"
Oh yes, okay."

제길. 우린 그렇게 시원한 콜라를 마셨다. 그리고 섬으로 들어간 우리는 게임기가 돈을 먹어도 쉽고 당당하게 단어의 조합으로 직원에게 환불을 요구했다. 돌아오는 날에는 섬 선착장으로 우릴 데리러 와야 할 가이드가 나타나지 않았다. 비행기 시간은 다가오는데 여권도 항공권도 다 가이드가 갖고 있는 터라 꽤나 조급해졌다. 우리를 잊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이왕이면 고급진 벤츠 택시를 탔다.(비행기도 아닌데 날아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단어의 조합으로 우리끼리 공항으로 찾아왔고 일행을 잊었던 여행사 직원은 얼굴이 파래져서 우릴 반겨줬다. 물론 택시 비에 마지막 일정이었던 싱가포르 벼룩시장을 둘러보지 못해 속상했지만 맛있는 저녁식사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그 일로 호랑이 연고를 사 오라는 친지들의 주문은 지키지 못했다. 지금이야 재미있는 에피소드지만 그땐 국제 미아 되는 거 아닌가 싶어 살짝 쫄았었다.

어쨌거나 이 책은 신혼의 달달함만 있는 게 아니라 결혼과 아울러 새롭게 인생에 들어온 시댁 및 처가에 대한 관계, 특히 시부모님과만들어지는 묘한 공기와 그에 따른 다양한 감정의 변화가 담겨있다. 특히나 "아플 때면 마음 편히 아파도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배운다."라는 내용 같은 일상의 깨달음들은 공감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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