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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심리/에세이]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 - 20대 암 환자의 인생 표류기

by 두목의진심 2018.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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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묘한 책 제목에 끌렸다. 그냥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과감히'란다. 바탕은 별론데 칼을 대서라도 '잘' 생기고 싶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쨌든 표류하고 있는 건 살아 있다는 것이니 그 또한 약간의 안도감이 생기기도 하고 이 친구(일면식도 없는데 '친구'라는 표현이 뭐 하지만 딱히 떠오른 표현이 없다) 은근 궁금하다.


그러면서 좀 더 뻗어 '난 이번 생엔 좀 생겨서 건강을 포기 한 걸까'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래저래 목이 부러지며 난 건강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나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한편 차가운 병실의 이불이라 하기엔 좀 민망한 서걱대는 천 쪼가리를 덮고 있었음에도 이 친구처럼 진지한? 고민이나 상념에 젖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 좀 더 가열차게 고민해 볼걸'이라는 아쉬움까지 들었다. 하긴 그땐 숨을 쉬어도 살아 있다고 하긴 어려운 때였지만.

"언제 병이 재발할지, 언제 죽을지 문득문득 심장이 철렁 가라앉는 기분이 불현듯 찾아오는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p6

프롤로그. 읽다가 예전에 너무 고통스러워 죽을 것 같아 입원 치료를 해야 했던 때가 떠올랐다. 워낙에 환자들이 넘쳐나 병실이 없어 재활치료가 필요한 내가 암병동에 기생한 적이 있었다. 말 그대로 기생. 치료의 결이 전혀 다른 환자들과 생활 싸이클을 맞춰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민머리의 그들이 기력조차 없이 침대에 파묻혀 링거에 의지할 때 나는 휠체어에 실려 '재활'에 매진하는 나는 어쨌거나 다른 류였다.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옆 침실의 주인이 바뀌는 통에 '죽음'이라는 게 먼 산 보듯 할 게 아니구나 싶었다. 매일 반복되는 재활치료의 일상이 고되고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 우연히 한 책상에서 민머리의 암 환자와 함께 치료를 받았다. 민머리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한 잘생김 했던 암 환자였다. 

조용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져 한쪽 팔다리가 마비된 편마비 환자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팔이 답답했는지 진절머리를 낸다. 그러면서 민머리 암 환자를 부러운 듯 바라보며 말끝을 흐리며 "맘대로 움직이니 얼마나 좋겠냐"라는 말을 던진다. 그저 자신의 처지가 한스럽고 답답해서 한 말이겠지만 "좋겠냐"라는 말이 엉뚱하게 내 가슴에 박혀버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옆 침대의 주인이 바뀌는 것을 지켜본 터라 순간 발끈 해져서 "그래도 당신은 죽지는 않지  않느냐!"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어 버렸다. "죽지는 않지 않느냐"라는 말이 그 암 환자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하루하루 5분 대기조같이 언제 어떻게 갑자기 병세가 악화될지, 생명이 위독한 상태에 빠질지 모르는 마음을 졸여가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에 내 말은 오히려 가슴을 난도질한 게 아닐까.



"어차피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공감할 수 없다." p27

타인의 공감 능력 부재를 단언해 버린 저자의 심경이 마음 아프다. 사지 육신이 마음처럼 움직여주는 상태다 보니 사람들에게 덜 고통스러운 것으로 비쳐지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랄까. 어쨌든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와 반대로 나는 습도가 치솟는 장마철이나 눈이나 비가 오기 전의 흐린 날이 아니거나 특별히 몸의 변화가 있지 않는 한 고통은 별로 없다. 말 그대로 잘 지낼 수 있다. 그런데 사지 육신이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으니 날 대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온 힘을 다해 측은지심의 눈빛을 보낸다. 어쩌다 그랬냐느니, 얼마나 아프겠냐느니, 많이 힘들겠다는 둥. 다시 말하지만 난 아프지도 않고 잘 지낸다. 그저 오겡끼데스オゲンキデス다.

"투병생활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과 ‘죽어간다는 것’이 이렇게나 애매하게 섞여있을 수도 있음을 느꼈다. 심장은 꾸준히 살아가는 중이지만, 암 환자가 된 순간 나는 동시에 ‘죽어가는 사람’이기도 했다. 암 환자로 살아가는 인생은 마치 ‘아포가토’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느꼈다. 아이스크림처럼 마냥 달달한 상황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에스프레소처럼 씁쓸하기만 한 인생을 살아가느냐고 묻는다면 또 그렇게 한없이 슬프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달달함과 씁쓸함의 경계에 있는 애매모호한 인생이라고나 할까." p51

재활이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의사들의 바람일 뿐이다. 목이 부러지며 중추신경이 온통 끊어지고 다치면서 나는 더 이상 사지 육신을 내 맘대로 쓸 수 없다. 그래도 민머리는 안되고 죽어가지도(사실 늙어가는 게 죽어가는 거라면 할 말은 없지만) 않는다. 그렇게 내 병은 여기서 멈췄다. 고통은 나이와 함께 점점 커지고 있지만. 저자처럼 내일이 없을지 몰라 가슴이 철렁 가라앉지 않는다.

한편 공감되기도 하는 건 30년 지기 내 친구들이 이렇게 사지 육신이 프리하지 않은 내 앞에서 사는 게 힘들다고 징징대는 통에 "니들이 나보다 더 힘들겠냐"라고 핀잔을 줬더니 "세상에서 네가 제일 힘들다고 착각하지 말아라. 다 저마다 가진 고민이 제일 크다"라며 받아친 덕에 요즘은 고통 수위에 대한 우월감을 내려놓고 그저 닥치고 조용히 지낸다.

26살 똥쟁이의 유린 당한 존엄성을 읽으며 49살 똥쟁이는 이미 오래전에 없어져 감각조차 느낄 수 없는 수치 플레이가 떠올라 서럽게 울어 버렸다. 제기랄. 또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죽음을 차례로 목도하면서 "어쩌면 사람의 생명이란 타인의 마음속에서 정해지는 것"라고 말하는 저자의 마음이 충분히 공감된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스스로의 인생이 슬프지 않다고 말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담담한 시선과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어둡고 아프게 자신의 환부를 드러내지 않은 저자의 감수성이 오늘 하루 촉촉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잠실에서 학교를 다니며 올림픽공원과 석촌호수에서 양아치 짓을 좀 하며 자랐던터라 더욱 친근함이 느껴졌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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