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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가족/사회] 당신은 누구와 살고 있습니까? - 가족의 틀을 깬 놀라운 신상 가족 밀착 취재기

by 두목의진심 2017.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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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에서 '가족'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한 다큐멘터리는 <판타스틱 패밀리>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후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당신은 누구와 살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왔다. 궁금했다. 도대체 신상 가족은 무엇일까?

가족의 의미는 뭘까? 그보다 가족을 쉽게 정의할 수 있을까? 소위 말하는 '가족'은 '식구'와는 좀 다른 개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밥을 같이 먹는 사이 정도로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단순히 한 집에 머무른다고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대체 가족은 뭘까? 이 책은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공교롭게 가족의 의미를 담은 영화를 내리 두 편이나 본 후라 더 그렇다. 지지고 볶고 싸우고 헐뜯고 상처 주고 숨이 막혀 버틸 수 없을 것 같아도 돌아서면 그립고 안쓰럽고 위로가 되는 그런 존재다. 가족은.

'혈연(血緣)'으로 묶인 사람들. 그 안에 애정이 없다면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족이란 '피'를 나눴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아닐까. 밖에서 힘겹고 아프고 쓰린 상처를 안고 돌아왔다면 어깨를 내어주고 다독이고 쓰담쓰담 해줄 수 있는 사람들. 때론 서로에게 고통이 될지라도 말이다.

내용에 등장하는 한 가족의 사례 역시 그런 생각하게 한다. 자신과 아들을 동일시하며 불필요하게 엄격하기만 했던 아버지 이사오 씨는 큰 수술을 하고 누워있는 아들 토모 씨를 보며 그제야 아버지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서투른 아버지였다고. 하지만 아들인 토모 씨는 그때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죽지 말고 살아서 아이를 낳아라"라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다고 한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부자가 기억하는 한 장면에 두 사람은 동상이몽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다. 그게 가족이니까 말이다.

솔직히 이 책은 나에게 가족이라는 의미를 재정의 해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혈연으로 묶인 가족, 그러니까 가족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명확하게 해주었다고 해야 할까? 나 역시 여전히 불편한 아버지와의 관계, 이미 중년을 넘어서고 있는 아들의 재정을 도와주시려 애쓰시는 어머니, 졸지에 장애인이 돼버린 형을 대신해 장남 노릇을 기꺼이 짊어지려는 동생과 표현은 서툴지만 마음으로 응원해주는 막내 그리고 17년을 살아오면서도 나를 여전히 예뻐해 주고 아껴주는 아내와 엄격하고 고집스러운 아빠를 밀어내지 않는 두 아이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분명 로봇이나 동물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로봇과 가족이 되는 시대. 로봇이 지능을 넘어 감정을 공유하는 시대. 그래서 두려운 시대. 이렇게 날로 발전을 거듭하는 과학을 이처럼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과학이 일상이 되면 그건 곧 생활이 된다. TV가 그랬고, 스마트폰이 그랬다." p15

로봇이 과연 가족인가? 아니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처음엔 "뭐 그럴 수도.."라고 생각했지만 책장을 다 덮은 지금은 분명 "아니오"다. 감정을 나누기만 하고 받는 것이나 스스로 위로받는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분명 소모적이다. 위안이나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감정을 공유할 수 없음으로 난 분명하게 "아니오"라고 생각한다. 사실 인공지능 페퍼의 등장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사람과의 소통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금은 고독의 시대가 분명하긴 하다.

<혈육이 가족이라는 올드 한 생각> 편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LAT(Living Apart Together), 일명 '따로 또 같이'라는 삶의 방식. 요즘 대한민국도 '졸혼(결혼을 졸업한다)'족이 늘고 있다는데 평생을 티격태격하면서 살아오신 내 부모님을 지켜봐온 나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싸우면서 정든다"라거나 "관심이 없으면 싸울 일도 없다"라는 말은 그저 결혼을 유지하기 위한 합리화일까? 한편으로 나도 많이 연로하신 부모님께 함께 살자고 하면 손사래를 치신다. 이미 두 부부만 사는 것에 익숙해져서 자식이지만 '남'하고 자신의 삶을 공유하고 싶지 않으시단다.

이처럼 부모 자식도 이제 '남'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이 책이 던지는 "가족의 정의는 혈육인가?"라는 화두는 분명 흥미롭다. 하지만 많은 생각과 아울러 점점 개인적인 라이프 스타일만 중요하게 여기는 개인주의로 흐르는 것이 우려되기도 한다. 사실 나는 이 책의 띠지에 있는 '핏줄에 연연하고 가족에 대한 애증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글귀를 보는 순간 맘이 상했다. "괴롭히다니" 가족이 서로에 대한 애정이 그렇게 표현되는 게 올바른가에 대한 생각이 들어 말이다.

'나'와 '타인'이 아닌 '가족'인데 혈육으로 연결된, 나와 피를 나누고 가치관과 생활습관 내지는 가족문화를 나눈 가족인데 그게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표현되는 것이 속상하다. 그리고 나는 진화된 가족의 신개념이 놀랍고 거부감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근래 보았던 영화 <걸어도 걸어도>와 <펜스>가 생각난다.

소개되고 있는 신상 가족 중 하나인 <펫팸족>은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가족 형태다. 아니 '가족 '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난 애완동물을 기르지 않아서 감정을 공유할 수 없어 너무 단정적일지 몰라도 '반려동물'이라 칭하면서 과도하게 애완동물에게 집착하는 게 불편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동주택에서 새벽까지 짖어대는 애견 동물의 짖는 소리에 잠을 자지 못할 때나 식당에 아무렇지 않게 안고 들어오는 사람들. 산책을 하며 대소변을 아무 데나 거리낌 없이 해결하는 것들을 볼 때 등 문득 사람보다 더 아끼는 장면을 보면서 그런 애정을 사람에게 쏟으면 좀 더 세상이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의 선택을 뭐라고 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타인의 불편함에는 아랑곳하지 않거나 애호가들이 종종 말하는 "사람보다 낫다"라는 표현은 솔직히 불편하다.

내용에 사례로 들은 어떤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거나 힘겨울 때 옆에서 '무슨 일이냐 '라고 묻지 않고 가만히 기대주는 게 위로"라고 말한다. 또는 자신이 누군가를 돌봐줄 수 있어서 필요한 존재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사람과의 관계가 언제나 늘 행복할 수 없겠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위로받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가족은 서로에게 행복을 주기도 하고 고통이 되기도 한다." p164

어쩌면 이런 게 가족 일지 모른다. 때때로 고통이 되기도 하지만 위로가 되는 존재. 그래서 결코 버리거나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신개념의 신상 가족은 그럴 수 있을까? 자신에게 고통이 되는 존재라면 그냥 등 돌리면 남이 되는 사이가 아닐까? 결코 버릴 수 없는 '존재'가 아닌 돌아서면 남이 되는 '사이' 말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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