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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교양/심리]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 내 안의 잠재력을 깨우는 자기 발견의 심리학

by 두목의진심 2017.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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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은 시작 전에 p30의 민감도 테스트를 먼저 해보고 읽기 시작하면 자신의 성향을 좀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안내하고 있다. 또 각 장의 끄트머리에 처방전과 같은 민감성을 다소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나는 테스트의 결과를 보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그다지 민감한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궁금했던 이유는 나름 사회복지를 업으로 하고 있는지라 다소 "독특하다"라고 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민감성"의 차이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민감하다'라는 말이 '예민하다'라는 말과 어떤 의미적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사전을 뒤져보면 보다 쉽게 알기는 하겠지만 그런 학술적 도움을 바라는 게 아니라 '감정적 의미'가 궁금하다는 말이다. 더욱이 '신경질적'이라는 말은 또 어떻게 비교될까?

 

저자는 고등동물의 15~20% 정도의 민감한 부류들이 있으며 이 부류들이 민감하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 또 어떤 사회적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이런 것들은 내향적 혹은 내재적이라는 의미와는 다르다는 점을 확실히 한다. 또한 사람들을 피해 숨을 곳을 찾아 울음을 곧잘 터트리는 이런 민감한 사람들의 사회적 편견이나 보편적이지 않다고 치부해버리는 일련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이에 저자는 이런 일들을 "일반적인 사람들은 민감한 특성의 장점은 보지 못하고 그저 부정적으로만 생각한다."라고 하고 있다. 이 글귀를 보면서 발달장애인의 민감한 혹은 독특함의 접점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여타 다른 심리학 책들처럼 따뜻하거나 다독다독하지 않는다. 다만 약간 다른 의미로 '민감한' 혹은 '숫기없는' 사람들에게 궁디팡팡하며 격려해주는 느낌이다. 2장에서 민감한 아이의 대상이 '잠을 잘 못 자는 아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코르티솔이 다량 분비되는 문제를 보이며 이런 아이가 긴장감이 많다는 지적을 보며 초등학교 3학년임에도 유독 밤에 잠자리에 드는 문제로 애를 먹이는 내 아들이 민감한 성향의 아이였는가를 생각해 본다. 근데 내 아들은 어찌 된 일인지 눈 뜨고 있을 때는 외향적 그것도 아주아주 친화력 넘치는 외향적 아이다.

 

지나치게 긴장했을 때의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을 저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라는 예를 들고 있다. 물론 이보다 더 많은 여러 개의 보기를 들어주고는 있지만 이 글귀를 보면서 진정 부드러운 미소만으로도 긴장을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슬며시 해보게 된다.

 

p123의 자극에 대처하는 내 점수는 12점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는 생각과 이 정도면 좋은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런 거에도 굳이 좋은 걸 따지는 내게 웃음이 난다. 읽으면 줄곧 불편한 단어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정상적'이라는 단어다. 이 책은 '민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유독 '정상적'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다. 이 단어는 과연 저자의 선택인지 아니면 번역자의 선택인지 궁금하다. 도대체 '정상적'이라는 의미는 누가 어디를 기준으로 정하는 것인가?

 

"제시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자. 얼마나 혼란스러운 상황인가. 그는 긴장의 원인을 제어할 수 없다. 지금까지 아주 자상하다고 알고 있었던 상대방이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대방은 웃으면서 재미있어하고 제시도 좋아한다고 믿는다. 상대방은 제시가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가 정말 좋아하는지는 모르고 있다." p136

 

타인의 감정을 자기의 기준으로 판단해버리는 우를 범하는 전형적인 이야기다. 오빠를 마구 때리며 노는 아이에게 "오빠가 좋아서 그러는 거야."라고 말한다면 그 아이는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좋아하는 감정을 때리는 것으로 표현한다는 상담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적잖이 놀랐었는데 이 책에도 이런 지적이 나온다. 타인의 감정은 타인의 감정일 뿐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또한 '민감함'으로부터 오는 내적인 부분들의 자극은 무조건적으로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저자는 조심스럽게 조언한다. 이런 민감함으로부터 오는 불안감은 새로운 것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거부하게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아울러 새로운 상황을 견뎌 낼 수 있는 경험의 중요성 또한 강조하고 있다.

 

"적어도 노력을 하면 완전한 실패라고 할 수 없으며, 뒷전에 앉아 있을 때보다는 훨씬 더 자신감이 생긴다." p211

 

6장의 <직업에서 민감함이 장점인 이유> 중에서 저자는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당한 정치적 페르소나를 써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매우 민감하거나 그럭저럭 민감한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외향적이고 활달한 사람조차도 직장 생활이라는 게 정치적이고 적당한 페르소나는 필요한 게 아닐까. 그래야 조금은 버틸 수 있으니까. 그리고 또 기억에 오래 남는 말. "문은 닫혔지만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마음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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