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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문학/소설/청소년] 로봇 소년, 학교에 가다

by 두목의진심 2017.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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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소년, 학교에 가다>는 출판 미래인에서 청소년 걸작선 50번째로 펴낸 작품이다. 요즘 미래 직업군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예측되는 인공지능(AI)를 주제로 다룬다. 독자에게 단순히 과학적 지식이나 인공지능에 대한 미래 지향적인 책은 아니다. 앞으로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에게 과학을 어떻게 탐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학적 접근이 아닌가 싶다. 책 말미에 옮긴이의 글에서 청소년에게 묻는다. "로봇은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사실 로봇의 모양이 인간의 모습을 추구하고 있다고 감정을 가진 친구라는 의미를 갖게 될까? 로봇이 인간의 편리성 혹은 위험으로부터 대신할 역할적 기계여야 하지 않을까? 그게 그것들의 존재 이유일 테니. 그런데 인간이 자신의 지적 호기심이나 한계성을 과시하기 위해 자꾸 기계를 인간화 시키려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맥스의 엄마가 기계로부터 일자리를 빼앗고 기계를 병적으로 거부하는 내용이 있지만 사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걸 경고하고 있다.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종이를 만들고 거기에 인쇄를 하고 '사각'하는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넘어가는 책장 소리를 기계가 이해할까? 이런 점점 소멸되어 가는 인간적 모습을 기계는 대체할 수 없다는 지적을 담는다.

 

사실 인공지능 로봇에 관련된 책이나 영화의 주제는 인간이 미래에 갖게 될 희망이나 기대감보다는 불안한 심리에서 기인한다. <로봇 소년, 학교에 가다> 역시 이런 인공지능 로봇 퍼지가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정보의 양을 데이터화해서 인간인 맥스와 친구들과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큰 줄거리로 다루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인간이 일자리를 로봇에게 뺏기는 것 때문일까? 인간과 로봇이 교감이 가능하고 그 교감을 넘어설 때 발생할 수 있는 로봇의 제어 기능은 인간이 지닌 감수성을 따라갈 수 있을까? 로봇이 선과 악조차 구별이 가능한 수준이라면?

 

로봇이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존재할 때 그들의 가진 기능이 유익할 수 있을지 모른다. 숱한 영화에서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전쟁이나 폭력 등 선이 아닌 악의 편에 사용될 때의 심각성은 스스로 해결되거나 혹은 인간이 제어할 수 있을까. 나아가 인공지능이 자신의 감정을 갖게 되는 경우나 인간을 넘어선 그 무엇을 원하는 경우 그건 아마 재앙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린, 인류는 이런 모든 변수를 과연 제어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좀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자체 컨트롤 타워인 바바라 교감이 직원을 포함한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감시하고 기계적인 벌점을 부여해서 인간을 점수하려는 시도다. 여기에 인간적인 처사는 전혀 없다. 이 점이 인간과 기계의 차별화된 이해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되었음에도 여전히 학생들은 지식을 주입해야 하는 교육과 시험을 강요받고 있다는 점이다. 정녕 인간은 시험으로만 능력 검정을 해야만 하는가.

 

섬뜩한 바바라 교감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사의 공간을 스스로 창조해 낸 인공지능이, 퍼지가 어느 순간 맥스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과 기쁘다는 감정을 갖게 되는 순간에는 <바이센테니얼 맨>이, 맥스를 도와야 한다는 프로그래밍이 작동하고 맥스를 지키려 바바라 교감과 사투를 벌이는 내용에는 <아톰>이 그려졌다. 과연 인간은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창조하는지 인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창조하는지 그로 인해 어떤 미래가 도래될지 예측 가능한 시대는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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