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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문학/에세이] 이재명은 합니다 - 무엇을 시작하든 끝장을 보는 사람, 이재명 첫 자전적 에세이

by 두목의진심 2017.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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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시련은 늘 함께 다닌다. 하지만 시련의 역할은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희망의 강도와 절실함을 시험하는 것이다." p26쪽

 

<이재명은 합니다.> 단호함이 묻어나는 제목이 끌린다. 남들 다 안 하겠다고, 못하겠다고 하는데 난 하겠다는 의미일까? 어쨌거나 자전적 에세이가 다 그렇듯 자신의 이야기가 특별함을 담고 있다는 것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이미 제목에서 한점 먹고 시작하는 느낌이다.

 

저자는 현직 성남 시장으로 자신의 과거를 밝히기 꺼릴만한데 불편한 가족사에서부터 자신의 장애에 얽힌 내용도 담고 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나름의 강렬함을 끌어내기 위해 아버지와 셋째 형의 이야기를 풀어 놓은 게 아닌가 싶다. 가족을 내팽개치고 돌보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소회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라는 다짐이,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부분이 너무 쉽게 허물고 있는 건 아직은 앙금이 남아 있지만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그렇게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라고 다짐다짐하며 살아온 탓에 저자의 말이 쉬 공감이 되지 않고 입가에 쓴 미소가 지어진다.

 

등산처럼 성공도 습관이다.

낮은 목표를 정해 이루어 내는 '맛'을 들이면 성공도 습관처럼 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참 근사하다. 우리는 수많은 자기 계발서 목메는 이유가 그들이 이룬 성공을 닮고 싶어서가 아닌가. 그런데 성공의 기준을 높은 곳이 아닌 낮은, 자신이 쉽게 이룰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말은 성공을 향한 동기부여를 갖기에 좋다. 그동안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이나 울보 시장 등 몇몇 정치인들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었지만 이 책만큼 정치적 신념을 강하게 피력한 책은 없던 거 같다. 성남 시장, 대권 주자로서의 이재명을 좀 더 알 수 있는 책이다.

 

 

내 성격이 모가 난 건지 아니면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픈 것인지 모르겠으나, 저자가 성남시에서 쌓아왔다는 치적들을 읽으면서 자꾸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난 정치적 관심이나 소양이 높지도, 소신도 없는 편이지만 저자가 추구하는 3대 무상복지 중 청년 배당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나 역시 성남 시민이고 그가 성남의 발전에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어 그의 정치적 행보에는 그다지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 250만 청년 실업자가 넘어서는 마당에 성남시 청년들에게 국한시켜 배당을 지급하는 게 옳으냐 하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논란에 청년 배당은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이며, 지역 시장 활성화를 위한 것이라는 항변을 내놓았다. 현금이 아니니 괜찮다? 한데  청년들은 지역화폐를 현금과 거래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현금처럼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변명일 수밖에 없다. 지자체 혹은 지역주의의 활성화는 좋다. 하지만 내가 세수를 아껴 내 지역주민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는 지역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일자리나 창업 허브를 조성해서 타 지역의 청년들도 함께 하는 일자리 창출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도대체 청년 배당은 언제 공표한 일인지. 내가 정치적 관심이 낮은 탓도 있겠지만 청년 배당을 위해 주민의 의견을 구한 것도 공청회를 열긴 했나? 그냥 시장이 결정하고 집행하는 일인가? 

 

정치인들이 선거 때 늘 하는 말이 자신들은 국민의 머슴이요 일꾼이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솔직히 언제 자기들이 국민을 위해 일을 한 적이 있던가. 국회라는 울타리에 들어앉아 놀고먹는 게 일인 자들 아닌가. 그들에게 머슴의 지위를 준 적도 없다. 자기들이 스스로 그런 것일 뿐. 이 책에도 저자도 자꾸 스스로 국민의 머슴이라고 자처한다. 자신을 낮추고 국민을 섬김다는 표현은 반감만 높일 뿐이다. 그저 같은 사람이며, 같은 국민이고 하는 일만 다를 뿐이다. 누가 누구의 머슴이며 누가 누구를 섬기는가. 다 '표'가 필요한 자들의 사탕발림일 뿐인 것이다.

 

전 세계가 자국을 위한 쇄국정책의 기조로 흐르고 있기는 하지만 내 지역 청년만을 위한 정책은 환영하지 않는다. 또한 보편복지라는 이상적인 제도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꼭 그게 능사는 아니라는 점도 알아두었으면 싶다. 복지 선진국도 무조건적인 보편복지는 지양한다. 능력에 따라 차등복지가 주를 이룬다. 차상위 소득자의 자녀와 부유한 자녀의 아이가 똑같은 혜택을 누리는 게 아니라 능력이 되는 사람은 적게 소득이 적은 사람은 많이 혜택을 누리는 게 복지의 형평성을 이룬다. 물론 무조건적 시혜의 돌봄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종이접기 교실에 참가하는데 참가비가 10만 원이라면 부유한 사람은 7만 원을 소득이 적은 사람은 3만 원을 내는 식이 좋다는 것이다. 무조건 보편적 의미로 똑같이 5:5를 지불해야 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보편복지에 앞서 대기업의 법인세 인상 후 세수를 늘리고 난후 이루어져도 늦지 않다.

 

 

가장 낮은 곳에 있겠다는 다짐일까? 책 맨 아래 걸쳐있는 그가 인상적이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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