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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문학/에세이] 지율 스님의 산막 일지

by 두목의진심 2017.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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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것들에 대한 미안함.

구도자의 삶에 대한 영역은 도시를 벗어나 입산하는 것으로 채워지는 것일까. 10가구가 전부인 깊은 산속 끄트머리 오지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삶을 잇는 스님 "지율"을 알지 못 했다. 그녀가 비구니인 것도 천성산 지킴이로 생사를 걸고 생명을 지키려 했던 것도, 또 4대 강, 강줄기를 지키려 애쓴 것도 몰랐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연신 TV 뉴스에서 4대 강 사업은 정작 강을 죽이는 일이라 외치고 있었으니까. 그저 내 정치적 무관심으로 생명의 중요함도 덩달아 무관심에 묻혔다. 그걸 이제야 깨닫는다. <지율스님의 산막일지>는 그런 지율 스님의 생명에 대한 이야기처럼 따뜻한 책이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나는 그분이 밭에서 일할 때, 풀을 벨 때 호미질과 낫질하는 손을 유심히 본다. 그리고 이내 깨닫는다. 자야 아재의 눈은 보는 데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보려 하지만 자야 아재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p57

 

나무를 한가득 지개에 지고 재 넘어오시는 나야 아재의 걸음이 눈에 밟히는 듯하다. 당뇨로 이미 더 이상 세상의 것을 볼 수 없지만 평생을 지고 넘었기에 아재의 걸음은 쉼이 없고, 오히려 아재를 맞닥뜨린 지율 스님이 멈추어 숨을 고른다. 보이지 않는 아재를 위한 배려가 아닌 숙연함으로. 도시가 복잡할수록 인간사 역시 복잡해지는 게 아닐까. 도시를 벗어나 세상의 끄트머리 마냥 인적 고요한 마을에 머문다면 시간도 함께 사람을 따라 조용하고 느릿하게 사람 곁에 머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책은 사람 냄새나고 조근해서 좋다.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친구가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은 자기가 만지고 사랑하는 물건과 사람에 의해 길들어 간다. 돈과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돈과 명예에 길들어 가고, 술과 노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과 노름에 길들어 가며, 친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친구에 길들어 간다. '지금 나는 무엇에 길들어가고 있을까?'" p66

 

매서운 바람이 양철 지붕을 데리고 갈 만큼 추운 1월과 2월이 지나고 봄이 오는 3월의 한자락에 만나게 되는 이 글에서 나를 생각한다. 돈과 명예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고 술과 노름은 질색하지만 친구는 좋아했는데 지금은 스스로 멀리하다 보니 가까이할 친구가 떠오르지 않는다. 외롭지 않아 외로운 나는 친구에게 길들여 있지 않았나 보다. 친구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나 보다.

 

"묘목을 옮겨 심으며"를 읽다가 기발하고 유쾌한 나무 이름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낫다. "사귑시다 아가시나무", "크긴크다 말좃나무"라니 산속에 팔십 평생 들어앉아 있으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되고 구도자가 되는 걸까.

 

추억이란 과거의 시간, 행복에 머문다.

"땅의 힘을 받고 풀들이 무성해지고, 나무들이 푸른 잎을 펼치는 계절이다." p120

 

스님의 5월 예찬이다. 푸르고 생동감 넘치는 5월이라는 걸 알지만 이처럼 표현할 수 있는 혜안이 부럽다. 또한 유년시절 땅거미 질 녘까지 정신을 놓고 놀다가 엄마가 "밥 먹어라"라고 외치실 때가 내 놀이의 끝이었음을 기억하게 하고, 고소하다고 달래며 먹어보라고 입에 넣어주시던 원기소가 그렇게도 먹기 싫었던 기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울컥하다. 세월이 지나 오십이 낼모레여서 아득해야 할 유년의 기억은 이리도 생생한지. 그렇게 그 시절을 "그때가 좋았다!"라고 하는 나는 왜 도시에 안주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결국 눈물을 보였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눈물 바람을 하면 아내나 아이들이 웃곤 하는데 더구나 책을 읽다가 눈물바람을 하는 꼴을 보이면 더 많이 웃을 거 같아 얼른 눈을 손으로 닫고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다름 아닌 불구가 되었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에 쓰이는 걸 꺼려했다는 호영의 이야기, 그의 큰 형이 사진 속 동생을 가리키며 "엄마, 여기엔 팔이 있다."라는 대면 대면해도 사랑 가득한 형제의 회한을 마주하다, 어느 날 갑자기 불구가 된 내 모습에 내 손을 잡고 서럽게 "장남 노릇 잘하겠다."라고 다짐하며 내게 걱정 말라던 동생의 눈물바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철없고 밖으로만 겉돈다고 생각했던 두 살 터울 동생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나보다 더 장남 노릇을 잘하고 있다.

 

간간이 정치적 소신이나 사견을 풀어 놓기도 해서 덩달아 울분이 일기도 하지만 이 책이 문득문득 울컥해지는 이유는 그런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내 어머니가 가슴을 채우기 때문이다. 스님의 1년 동안의 산막 일지는 단순히 1년의 기록이 아닌 시간이 더디 흐르는 세월의 발자취가 아닐까 싶을 정도며, 차분하면서 대화하듯 자연스러운 활자를 따라가다 보면 이내 마음이 훈훈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터지고 갈라지고 두터워진 손을 흔드는 내 어머니가 그 오지 산막에 앉아 계신 듯하여 울컥하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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