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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문학/에세이] 날개 꺾인 너여도 괜찮아

by 두목의진심 2017.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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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신은 정의로운가.

드라마 도깨비에서 신은, "너희에게 운명을 주었고, 나는 질문하는 자다. 질문에 대한 답은 너희가 찾아라."라고 한다. 인간의 운명에 대한 삶의 방향에 대한 기가 막힌 표현이 아닌가 싶었다. 하여 매우 곤란하게도 이 책을 읽으며 그 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장애 당사자와 그 가족의 고통이 예사롭지 않았다.

 

자꾸 도깨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좀 그렇지만 하도 인간사에 대한 울림이 있던 드라마여서 좀 가져다 쓴다. 전생에 감당하기 힘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기억을 지우고 죄지은 자들에 대한 분노를 삭여야만 하는 벌을 받으며 저승사자가 된다 하였다. 한데 장애인은 무어란 말인가, 죄를 어정쩡하게 지어 사람으로 환생하지 못하고 사람이되 사람대접 못 받는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인가. 그럼에도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가. 속도 없이.

 

"대개 내가 무언가를 보여주면 넌 삼십 초쯤 관심을 보이는가 싶다가 이내 너만의 세계로 떠나버리니까. 어쩌면 내가 틀렸는지도 몰라. 어쩌면 넌 관심이 있고 재밌는 건지도. 어쩌면 다만 너와 나, 우리의 시간관념이 다를 뿐인 건지도." p70

 

<날개 꺾인 너여도 괜찮아>는 몹시 담담하게 툭툭 던지는 듯해서 가슴이 저려온다. '장애'가 주제인 책들은 장애인 당사자자의 입장에서 쓴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들이 대부분인데 반해 이 책은 가족 안에서 그것도 주 양육자가 아닌 여동생의 입장에서 장애인인 오빠를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삶과 가족의 삶에 오빠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들려주고 있다. 사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 특히나 이성적이지 않고 온통 감각적인 것들로 채워진 발달 장애인이 있다는 것은 경험하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온몸으로 마주 서야 하는 가족들에겐 힘겨운 일이지만 정작 그런 시선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당사자는 오히려 덜 힘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오빠 필로는 지적 장애로 번역되었지만 내용을 보면 자폐성 장애로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지적 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발달 장애로 구분하고 있다. 발달 장애인은 세상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비장애인이 상상할 수 없는, 그들은 거의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소리에도 색에도 공간에도 자신들만의 규칙이나 정해진 방법이 있어 그런 것들을 벗어나면 불안해한다. 그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는 방법을 맞닥뜨리면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비장애인들이 보기엔 그들의 말이나 행동은 특이하거나 불편해한다. 때로는 과도하게 무서워하기도 하며 그런 이유로 이들을 사회에서 분리시키려 한다.

 

장애가 인식된다고 날개가 꺾인 것은 아니다.

동생의 안의 시선으로 바라본 오빠 필로는 7살 이후 든든한 오빠가 아닌 이제는 보살피고 도움을 줘야 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 지점을 안은 오빠 필로의 날개가 꺾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안의 마음에 공감이 돼서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안은 "넌 중학교 3학년까지 정상적인 교육을 받았어"라며 '정상적'인 모습이 아닌 오빠의 존재를 아쉬워하기도 한다.

 

영화 <어카운턴트>나 다큐 <야코브 이야기>에서도 발달 장애인의 '정상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도대체 '정상성'이 무얼까? 난 정상적이긴 할까? 정상이라는 정의를 스스로 내리지 못한다면 몹시 곤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가족조차도 때때로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사람이 아닌 '장애'만 보기도 한다는 점이 안타깝다. 주변 환경과 상호협응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는 그들에게 지쳐 삶이 버거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안 역시 자신의 삶보다도 오빠 필로의 삶을 먼저 걱정하고 그와 함께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챙길 수 없으니 얼마나 힘들까.

 

책 내용 중에 필로가 독립적으로 여름휴가에 맞춰 가족을 떠나 여행을 가는 내용이 있는데 요즘 우리나라도 발달장애인 가족을 위한 돌봄 휴가제나 부모 힐링캠프 등 장애 당사자와 분리하여 부모, 특히 주 양육자를 쉬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거의 대부분의 복지관에서 시행하고 있다. 물론 주 양육자의 고된 일과에서 벗어나 한숨 돌리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긴 하지만 주 양육자와의 관계에서만 반응을 보이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새로운 불안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은 과연 이런 분리가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좋은 방법인지는 깊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독립적인 삶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렴 내가 잘 알지. 겁을 집어먹으면 네가 말이 없어진다는걸. 놀라도 말을 안 하고, 불안하거나 당황하거나 잘 모르거나 버림받거나 불행해도 말을 안 하지.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 열리지 않는 석화랄까. 아주 사소한 질문조차 대답하지 않잖아. 네 입을 열게 하는 건 불가능하지. 최악의 고독, 완전한 유폐. 어린 시절로 거슬러올라가는 유서 깊은 피신처. 그 때문에 네가 갖고 다니는 신분증 수첩 속에 아빠, 엄마, 나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기입된 카드가 들어 있는 거였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난 그걸 알고 있었지만 푸아티에의 상냥한 철도청 직원이야 알 턱이 있나. 그러니 네 배낭을 뒤져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겠지." p95

 

발달 장애에 관한 적절한 묘사가 아닐까 싶다. 자신만의 깊은 세계,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자신만이 열수 있는 닫힌 세계. 혹시 길에서 이런 발달장애인을 만난다면, 묻고 또 물어도 대답은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고 혼자만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주절거리며 불안한 모습이라면 조용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가방이나 주머니를 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길 바란다. 그렇게 그들의 주머니 혹은 가방에는 그와 가장 빠르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보호자의 연락처가 있을 테니까.

 

나는 선한 자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일요일이 되면 그들은 17구에 사는 선한 가톨릭 신자의 얼굴을 하고서 미사를 보러 가겠지." p76

 

이 짧은 문장이 무언가 쿵 하고 떨어졌다. 부끄러움일까? 우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타인의 감정 따위는 눈곱만큼도 쓰지 않다가 주일에만 선한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진 않은지. 나 역시 가톨릭 신자로서 사회복지사로서 선한 탈을 쓰고 그저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장애인 복지관에서 많은 장애인들과 대면하다 보면 때로는 사회복지사들이 그저 '일'로 그들을 대하며 사무적으로 냉소적으로 때로는 시혜적인 눈길로 군림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조금 다른 모습인 '사람'이 아닌 어딘가 결핍된 '장애인'으로만 보려는 게 아닌지 반성을 한다.

 

이 책은 단순하게 여동생의 입장에서 장애인 오빠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오빠로 인해 지치고 힘들어 오빠를 부정하고 귀찮은 존재로 여겼던 일들에 대한 후회, 친구들에게 정상적인 모습의 오빠를 보여줄 수 없음에 대한 상실감이나 오빠로 인해 엄마가 지쳐 무너지는 모습을 속속들이 지켜보며 힘들었던 시기와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의 모습을 함께 했던 오빠 그 자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다짐이다. 또 비장애인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불편하고 불쾌해할게 아니라 다름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장애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을 하지 않으면서도 울림이 있는 좋은 책이다.

 

"너의 세계는 단순한 것들과 단순한 상황들로  이루어졌는데, 그건 너무 복잡하거든." p123

 

발달 장애는 발달이 좀 늦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게 지적 능력이든 사회성이든 조금 더딘 사람들. 근데 우리는 이들을 그저 지능이 낮다고 쉽게 규정하고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한다. 노예처럼 부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들이 행복하게 지내야 할 복지관에서조차 이단 옆차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늦는 게 있으면 빠른 것도 있다.

 

발달이 빠른 사람들을 우리는 영재 혹은 천재라고 부르며 이들을 무조건적으로 부러워하거나 경외시 한다. 이런 사람들의 부모를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비장애인이 정해놓은 '정상'이라는 기준에서 본다면 늦는 거나 빠른 거나 어쨌거나 둘 다 장애인데 왜 늦은 것은 왜 편견과 차별을 받아야 하는지. 이런 장애는 비장애인 만들어 놓은 편견과 차별일 뿐이다. 앞으로는 이런 다름이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 : 두목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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