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며 자식에게 버림받는 첫 세대'
베이비부머 세대를 표현하는 이 문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위 말하는 '낀 세대'로 위로는 연로하신 부모를 봉양해야 하고 아래로는 자식들을 부양해야 하는 봉양과 부양을 동시에 해야 하는 첫 세대. 그런 의미로 보면 나 역시 리틀 베이비 부머 세대로서 이 책이 던지는 '은퇴'는 의미는 쓰나미로 밀려든다.
나 역시 여든을 바라보시는 부모님, 이제 중학교와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있고, 3년 후면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지천명이다. 그런데 하늘의 이치는커녕 은퇴의 시기를 점치는 현실로 하루하루가 힘겹게 버티는 일도 장담할 수 없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생 역전'을 희망하며 쿨하게 은퇴하는 날을 꿈꾸며 다가갈 뿐이다. 사실 노후나 은퇴 후의 격정 어린 삶을 꿈꿀 수 없을뿐더러 당장의 현실이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여유 따위는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불안과 걱정을 얹어주는 셈이지만 한편으로는 나 이외의 많은 사람이 이런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하고 있다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훌륭한 삶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지난 세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건, 우리들 각자가 걸어온 삶은 어느 하나 위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 마라톤의 반환점을 막 돌았을 뿐, 경주가 끝난 것도 아니다." 137쪽
'불확실한 노후를 위해 현재의 삶을 담보 잡히는 게 옳은가?'의 질문은 세대 간의 차이를 보인다. 요즘 청년기의 기조는 당연 현재의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나처럼 일정 부분 낀 중년의 세대는 미래의 안락한 삶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볼 때 누구의 선택이 맞다, 틀리다를 논할 순 없지만 학업을 마치고 일정 기간, 대략 20여 년쯤 근로를 하고 50~60세쯤 은퇴를 한다면 근로를 제공한 기간만큼의 노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이런 의미에서 '과연 2016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런 미래를 보장해 주는가'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서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더욱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지 모르는 N포 세대인 청년 세대는 팍팍한 현실 앞에 당장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또한 미래, 노후가 불안한 이유는 팍팍한 현실에도 매달 상납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당연한 것쯤으로 여기는 공적부조의 당면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당장 쓸 돈도 부족한데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불확실을 안고 사는 현대인들이 노후의 안락한 삶을 위해 개인연금을 고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다 보니 당장의 현실이 중요하고 여기에 '행복'이라는 감정적 요소를 첨가해 '오늘이 행복해야 내일이 행복하다' 든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같은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하지 말자는 기조가 형성되는 게 아닌가 싶다.
<은퇴 절벽>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었던 폴 어빙의 <글로벌 고령화 위기인가 기회인가>가 생각났다. 폴 어빙은 인구 고령화를 부정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볼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갖고 있는 축척된 '경험'의 산물을 가볍게 보지 말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사실 간과된 중요한 점 중에 하나가 '일자리'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축적된 노하우가 넘쳐 난다고 해도 경력단절이 없는 일자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런 '경험적 산물'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한 세대 혹은 반 평생을 한 가지 일에 달인이 되었지만 '정년'이라는 막다른 길에 비자발적 은퇴를 선택하고 나면 다시 달인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 결국 다른 생소한 허드렛일이나 단순 서비스 직을 전전한다면 과연 그것이 '축척된 경험'을 다음 세대로 나누는 일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는 고령화로 만들어지는 은퇴는 재앙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찾는다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돈의 지배와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삶, 돈 없이도 가능한 삶에 대한 방법 두 가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일이나 아름다운 소명 등의 더 '가치'있는 행위를 말이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의 빈곤을 감내해야 한다고 한다. 즉 '자발적 빈곤'을 감수하고서라도 돈보다는 삶의 가치를 고려하는 것 역시 방법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방법은 다름 아닌 '공동체적인 삶'이다. 이는 공유경제라 부르는 개인이 가진 재화나 능력을 지역사회 혹은 더 넓은 네트워크를 통해 함께 나누고 그 안에서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얻는 방식이다. 남이야 어떻든 나만 살고 보자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방식이 아닌 오래 알고 지낸 친구나 지역사회의 주민들과 함께 협동조합이나 공동체의 삶을 모색하는 방법도 은퇴 이후의 사람을 설계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하고 있지만 않다. <은퇴 절벽>이 시사하는 바는 '은퇴'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은퇴가 과연 인생 노동의 '끝'이냐 '시작'이냐의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은퇴를 본인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시기 전에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즉, 은퇴를 생각하기 전에 은퇴 이후의 삶을 먼저 고민하고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에는 충분히 공감을 한다. 인생 정점이 50세라는데, 이제 3년 후면 그 정점에 다다르는 나는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책에 등장하는 사례를 보니 막연한 생각이 아닌 인생 이모작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작하게 만든다. 은퇴를 생각하거나 준비하거나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은퇴자의 권리는 스스로 찾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242쪽
완성되지 않은 문장이 눈에 띈다. 33쪽에 보면 "공기가 탁하고 않는 습한 공간에서.."라고 되어 있다.
글 : 두목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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