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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데로서평

[문학/소설] 태양의 천사 : 허영숙. 이광수 실록 소설

by 두목의진심 2016.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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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평가할 때 인물의 평가가 빠질 수 없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과연 인물의 평가는 객관적이어야 할까 아니면 주관적이어야 할까. 위인전이 아닌 다음에야 작가의 주관적 평가를 이해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걸까. 이 책 <태양의 천사>는 춘원 이광수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를 둘러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아내인 허영숙을 포함한 그를 둘러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의도한 걸까? 이 책의 부제는 '이광수·허영숙'이 아닌 '허영숙· 이광수'로 되어 있다. 그리고 발행일이 광복절이다. 분명 춘원 이광수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그의 아내 허영숙을 포함한 신 여성들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 '이광수'하면 친일파, 매국노, 변절자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연상된다. 학창 시절에 그렇게 배웠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쨌거나 그의 평가는 그렇다. 물론 그가 뛰어난 문필가라는 것도 알고 소설과 시로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졌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그가 행했던 친일에 대한 평가가 희석되어도 될까? 여하튼 작가는 이러저런 이념적 사상을 제외한 '인간' 이광수와 '여인' 허영숙과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려 애쓴다.

책 머리에 생경한 단어가 눈에 띈다. 다름 아닌 "훼절해"라는 단어다. 무슨 뜻일까 해서 찾아보았더니 "부딪쳐서 꺽이다"라는 뜻이다. 변절이 아니라 훼절이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이광수가 '변절' 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에 대한 변명을 대신하는 듯하다. 모름지기 매국노라든지 변절자라든지 하는 개인사에 대한 논란은 받아들이는 자들의 몫인데 시작하기도 전에 '어쩔 수 없이 변절했다'라는 면죄부를 주자는 작가의 의도가 불편하다.

춘원의 이야기에 앞서 신 여성 3인방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긴 하지만 시대의 아픔이나 지식인들이 가져야 할 조국에 대한 정체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답답하다. 또한 조선 3대 천재 최남선, 홍명희와 달리 출신이 비천하고 생활이 곤궁한 춘원이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유학생활을 이어 나갔다는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그 속에 어렵고 궁핍한 생활을 '매일신보'에 투고하는 소설의 고료로 근근이 이어나간다는 이야기로 춘원의 생활상에 연민을 종용한다. 게다가 각혈을 일삼는 결핵환자라는 점도 부각하면서 말이다.

나는 솔직히 이광수가 친일파라는 것도 그의 인간적인 면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이 더 궁금했는지 모른다. 한 인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고 그 판단은 각자의 몫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왠지 '친일파나 변절자가 아니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친일파, 변절자는 맞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는 변명을 (작가는 '훼절'이라고 표현하지만) 대신하면서 민족적 반역자라는 어마 무시한 형벌은 주지 말자라고 면죄부를 주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여기에 허영숙과의 로맨스를 통해 더욱더 그 역시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기를 살아내야 했던 한 남자일 뿐이라고 하는 듯하다.

하지만 내용 속에 등장하는 춘원의 이기적인 행동들이나 예술가라는 포장으로 행해지는 그의 다양한 문화적 향유는 오히려 시대의 아픔이나 민족의 고통을 그려내고 고민하는 청춘들이 아닌 유학생활을 만끽하는 한량 같은 부류들로 그려지는 점은 인간적인 면을 생각하게 하는 것보다 오히려 친일적인 행동은 민족적 고민에서 나온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그저 자신의 일신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게다가 도산 안창호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생활상이나 이념, 지방색을 춘원의 입으로 대변한 이야기(293쪽)에는 묘한 불쾌감이 느껴진다. 춘원은 '2·8 독립선언서'나 '독립신문'의 사장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했었다는 사실이 있음에도 자신의 일신을 위해 한 것이지 조국의 미래나 동포의 고통을 짊어지기 위해 한 일이 아닌 거라는 편협할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춘원 이광수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그도 시대의 격변기를 관통한 한 남자였을 뿐이라는 인간적인 측면으로 바라봤으면 하는 게 작가의 심정이었다면 개인적인 느낌은 매우 흥미로운 소재와 이야기임에도 이 책은 오히려 의도와는 다르게 반감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가까지 허구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작가의 이광수에 대한 주관적 변명이 너무 일방적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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