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가는데로서평

[문학/소설] 모든 일이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에서 시작되었다.

by 두목의진심 2016. 7. 2.
728x90

 

"책을 읽는다고 해서 엄청난 깨달음을 얻게 되거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책 머리에 이렇게 소회를 밝힌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책이 인생을 뒤바꿔 줄 수는 없을지도 드라마틱한 인생을 만들어 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꼭 그렇지 아닐 수도 있다. 이렇게 흥분하고 설레고 빠져드는 책을 만난다면 말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은퇴의 날을 생각한다. 전망 좋은 바닷가 혹은 꼭 뜨거운 태양이 내리 쏟아져 따뜻한 파란색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바다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세상에 지친 눈을 잠시 쉴 수 있는 풍경이 있는 그런 호젓한 곳이 자리 잡고 온통이 책으로 뒤덮인 그런 커피가 있는 책방을 하고 싶은 소망을 가진 나로서는 이 책이 주는 설렘은 그 무엇보다 크다. 특히 "서점은 로맨틱한 생명체다"라는 이 말은 가슴에 각인된다. 그리고 또 "우리의 책에서는 사람 냄새와 헌책이 가진 온갖 가능성의 냄새가 난다."는 감동이 된다.


<모든 일이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에서 시작되었다.> 멋진 제목이 아닌가! 난 이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책은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뭔지 모를 기대감. 아주 기막히고 호기심 가득한 무언가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드래건플라이"라는 이름도 그렇지만 거기다 "헌책방"이라니. 온통 책으로 뒤덮인 좁디좁은  책 사잇길과 케케묵은 발효된 된장 같은 책 냄새가 콧구멍을 간질일 것 같은 그런 비밀스러운 공간이 너무 맘에 들었다. 그런데 이런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한 드래건플라이는 그다지 환상적이지도 설레지도 않고 그저 재취업을 포기한 매기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정도로 느껴진다. 말하자면 지루하다. 그런데 이건 딱 41쪽까지의 느낌이다. 정말 그렇다. 처음이 좀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길 바란다. 꼭 43쪽까지 읽길 추천한다. 그 이후는 끝까지 읽던 거기서 책장을 덮던 그건 당신의 선택이다. 여기서부터는 말도 안 되게 설레고 기대감이 폭발한다. 대체 이런 글을 보고도 어찌 책장을 덮을 수 있겠는가 말인다.


"일요일은 여름이 시작되는 날이에요. 그날 정오에 파어니어 공원 분수에서 만나요. - 헨리"


일면식도 없는 두 남녀가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필담을 나누며 사랑을 키워나갈 것에 이 묘한 기대감을 어쩌랴. 지루하기만 하던 매기가 갑자기 사랑스러워진다. 


"그곳에서 뭘 찾을지 아무도 몰라요. 아폴로는 예측 가능한 곳이죠. 계획대로 구획된 곳처럼.

드래건플라이는 지도도 없는 중세 도시 같은 곳이에요.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과 마주치거든요." 70쪽


그렇게 모든 일은 드래건플라이에서 시작되고 있다. 헨리와 캐서린이 그랬던 것처럼 매기와 라지트가. 이 얼마나 가슴 셀레이는가.


"나는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면서 평소처럼 하루를 보내려고 해요. 하지만 정신을 차리면 어김없이 여기에 와 있어요. 당신이 어디에 있을지 궁금해하면서. 129쪽


"우리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난 믿어요. 나는 당신의 모든 부분을 원한다는 사실을." 141쪽


"내 손이 당신 손에 닿으면 당신은 어떤 느낌일지 당신 이름을 부르는 내 목소리가 당신에게 어떻게 들릴지 알고 싶어요." 149쪽


앗! 헨리와 캐서린에 이어 매기와 라지트를 지나 제이슨과 니무에인가? 휴고가 우주는 기적으로 가득하다고 말할 정도의 혼돈의 관계가 펼쳐지고 있다. 이 순간에 말이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며 빠져들고 있다.


"프레더릭. 저는 당신이 말했던 온갖 보화를 직접 보려고 당신의 왕국을 친히 방문했습니다. 정말 장관이더군요. 하지만 안내인도 없이 그 숲에 감히 발을 들이지 못하겠어요. 당신이 날 안내해 줄 수 있을 때 다시 오죠. - 니무에" 169쪽


내 기분과 같은 문구를 찾았다.


"나는 이 페이지들에 내 심장을 버렸어요. - 캐서린"


나는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 아주 소중히 그러면서 깨끗하게 본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다시 그 책을 읽었을 때 새로운 기분이 들도록, 좋아하는 사람을 처음 마주하는 것처럼 설레는 기분을 가지고 싶어서다. 그런데 이 책이 나를 흔든다. 아니 헨리와 캐서린이, 매기와 라지트가 그리고 제이슨과 니무에가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비로소 가장 진실한 자아를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날 그녀의 웃음에는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지만 그의 눈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것은 <그들의> 웃음이었다. 그 두 사람만의 웃음 말이다." 236쪽


"사랑한다는 말 앞에는 <지금은>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그 단어의 맛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지나 마침내 내 삶에 도착하기까지 건너온 바다의 소금 맛이 났다. 하지만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238쪽


숨을 쉴 수 없다. 어쩌란 말이냐. 헨리가 헨리가 라지트라니. 그러면 캐서린은 어쩌란 말이냐. 판유리가 부서져 버리는 순간처럼 온몸이 굳는다. 이런 반전이 여기서 나올 줄이야. 캐서린과 매기 두 사람의 멍해진 얼굴이 스친다. 또한 갑작스러운 휴고의 죽음은 또 다른 반전이 된다. 드래건플라이와 매기와 그녀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캐서린의 실체는 먹먹함이 된다.


"지금까지 나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그것이 책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을 가로막은 문제를 풀고 앞으로 나가면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런 게 아니었다. 힘든 시간은 끝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다. 경계가 그다지 또렷하지 않다는 말이다. 힘든 시간은 행복한 시간과 얽혀 있다. 그리고 뭔가를 상실할 때마다 우리를 감싸는 침묵의 벽돌이 생긴다." 320쪽


이 책은 빼곡히 들어차있는 활자들에 눈이 아플 정도로 글 밥이 많다. 게다가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실들이나 상식들 지명들이 주석이 달려 읽기도 만만치 않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언컨대 이 책은 올해 내가 읽은 책들 중에 열 손가락 안에 꼽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에 맞는 배우들을 그려보며 행복했다. 정말 사랑스러운 책이다. 판타지보다 더 판타지 같은 그런 책이었다.

 

오타가 있다. 331쪽 1줄에 "녀석을"이 아니라 "녀석은"이 문장에 맞다.

 


 

글 : 두목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