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초여름. 월드컵에 미쳐있던 내게도 첫 딸이 생겼다. 간호사는 자신의 팔에 들려 꼬물거리는 신생아인 딸의 손가락을 하나씩 펴 보이며 마치 건강한 아이임을 증명하듯 보여줬다. 감격? 뭔지 모를 울컥함이 치밀어 올랐다. 말 그대로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마음이랄까. 그리고 15년이 지났다. 딸은 격변기라는 중2다. 다른 아이들이 흔히 겪는다는 중2 병을 겪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 하지만 이런 딸이라도 아이가 자라는 만큼 이해의 폭은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늘 고민스러운 건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좋은 부모일까?"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아내를 대신해 아빠인 내가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를 읽는다.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이들과의 관계인데 37가지의 행동 습관을 이해한다고 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겠냐마는 어쨌거나 그렇게 어려운 일임을 알고 하나씩 고치려 한다는 점에서 나름 만족스럽다. 육아 혹은 양육에 관련된 자기 계발서들의 그만그만한 지침 같은 것들이나 심리에 관한 내용들이지만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는 처음부터 쎄다. 더군다나 "인간관계의 모든 문제는 가정환경에서 비롯된다."라는 글귀가 부모가 된 입장의 나는 왠지 부당하다고 느껴졌다. 또 "부모"라는 다큐멘터리도 가끔 시청해보면 아이들의 문제 행동은 거의 모두 부모의 잘못인 양 악마의 편집이 되어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는데서 오는 부당함이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는 좋은 부모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예전 공익광고에서 이런 글귀를 봤다. "당신은 부모인가요? 학부모인가요?" 명쾌하게 부모의 입장을 가르는 이 말이 굉장히 자극이 되었다. 그렇다고 "학부모"가 아닌 그저 좋기만 한 "부모"로만 살면 과연 나도 아이도 모두 행복할까? 양육은 실로 참 어려운 숙제다.
서장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밝힌다. 나 역시 그렇지 않을까? 나 역시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을까? 그런 방법은 과연 있을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이 많아진다. 딸과 엄마의 관계에서 어긋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어긋나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특히 깜짝 놀란 내용이 있었는데 "엄마가 딸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61쪽)"을 읽으며 모두 내가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말이라는 것에 화들짝 놀랐다.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 아이들에게 상처 나 짐이 될 수 있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인지했다. 특히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라는 말은 내 단골 메뉴다.
또 나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은 "작은 상처가 더 아픈 이유(69쪽)"를 보면서 때때로 혹은 자주 그랬을지 모르지만, 단지 독서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차가운 말이나 표정, 태도를 보였던 기억이 스물거리며 떠올라 반성하게 된다.
"'엄마에게 매달렸는데 거부당했다'는 경험은 아이에게는 오랫동안 마음의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그저 '바빠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인식할 뿐입니다. 때때로 '그런 일이 있었어?'라며 기억하지 못할 만큼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부모도 꽤 있습니다." 69쪽
"'사랑한다'는 말은 그 범위가 너무나도 큽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사랑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사랑하는 방법'은 사람 수만큼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이 적절한 아닌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사랑은 수치로 나타낼 수 없고, 그 사랑에 관계된 사람이 느끼는 만족감이나 행복감으로만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죠." 96쪽
작가의 중요한 조언을 내 나름대로 함축해본다면 두 가지 같다. 하나는 아이에게 가정만큼 소중한 인격을 형성시키는 곳이 없다는 것과 또 하나는 "타인을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런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실천한다는 것이 어렵겠지만 말이다.
14번째 이야기 "심리적으로 독립하라"를 읽으면서 얼마 전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 멤버들이 강연을 하는 장면이 생각났다. 내용 중에 한 학생이 멤버에게 질문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학생은 입을 떼자마자 눈물을 지었다. "아직 자신의 꿈이나, 뭘 해야 할지도 갈피를 못 잡고 있지만 자신은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것들에 도전하고 싶지만 주위(부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에서는 '쓸데없는 짓을 하려 한다'며 질책한다"는 것이었다. 그 학생을 보면서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다니는 학생의 걱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소소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부모는 자신들이 가진 기대에 아이들이 못 미친다고 느껴지면 의례 "쓸데없는 짓거리"쯤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말에 공감되면서 아이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무조건 반대만 하는 부모가 내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작가는 "참을수록 인생은 힘들어진다.(114쪽)"고 말하고 있다. 이 말도 역시 많은 공감이 되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병에 걸린 듯 불편하거나 때로는 부당하다 생각해도 그냥 참고 넘어가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보니 어느샌가 나는 "예스맨"이나 "그냥 착한 사람"이 되어 있고 이미 각인된 그런 모습을 깨기란 너무 힘들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지치고 대인관계에 피로도가 쌓이고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게 된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좋은 건 아니라서 매 순간 갈등하고 혼돈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고개가 나도 모르게 주억거리게 된다.
"'자기 위주'의 사고 법을 가진 사람은 때때로 맞지 않기 위해서 '그곳을 떠나는' 결단을 내립니다. 반면에 '타인 위주'의 사고 법을 가진 사람은 남의 눈치를 살피느라 계속 그 자리를 서성일뿐입니다. 즉 후자의 삶을 살수록 상황은 점점 악화되지요." 116쪽
"서로 이해하려면 상대의 마음을 느끼고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134쪽
"대화다운 대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게 나을 때가 많습니다. 그 사실을 꼭 기억하세요." 139쪽
마지막으로 대화 속에서 중요한 심리적 패턴을 찾는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특히 "그게 아니라"에 가려진 의미가 이런 부정적인 것인지 미처 몰랐다. 대화를 이어가는 말 정도라 생각했는데 상대를 부정하고 나아가 상대를 짜증 나게 만들 수 있다니 나 역시 이런 말을 자주 사용하는지부터 살펴봐야겠다. 이 책은 비단 딸과 엄마의 관계 회복을 위한 지침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 부분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제가 모녀의 이야기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딸과 엄마가 아닌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보인다. 결국 "좋은 부모" "좋은 자녀"가 되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서로 이해하면 자연스러운 관계의 회복이 된다는 이야기다. 좋다 이 책.
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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